문에 달린 종에서 소리가 가게 안에 울려 퍼짐과 동시에 책을 팽개친 영영은 카운터에 서서 가게 안으로 들어온 손님을 살펴보았다. 단발머리에 수수한 외모, 하얀 블라우스 위에 분홍빛 카디건을 걸치고 하늘색과 군청색이 교차를 이루는 체크무늬 치마를 입은 스무 살 남짓이 되어 보이는 여자였다. 다만 피곤한 기색이 역력해 하품을 길게 하다가 숄더백에서 스마트 폰을 꺼내 메세지를 확인 하고서 주변을 살펴보던 그녀는 주문을 기다리는 영영의 눈빛을 읽었었는지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로 카운터에 다가섰다. 그는 가까이 다가온 그녀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무엇을 시키든 이런 젊은 대학생들의 경우는 거의 두 가지였다. 차 우려내는 시간에 지쳐서 취소하고 가거나, 차의 쓴맛만 보고 간 뒤, 다신 안 오거나.

“희한한 카페네. 이 집은 주문 안 받아요?”

영영이 그녀의 질문에 정신을 차리며 말했다.

“네, 어떤 걸 찾으세요, 손님?”

“잠깐만요.”

메뉴판을 골몰히 뚫어져라 쳐다보던 그녀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 집은 메뉴가 왜 이래? 사람이 별로 없는 이유가 있었네, 완전히 이름 모를 풀밭 꽃밭이잖아. 여기가 secret garden이라도 되나 봐요?”

그는 갑작스러운 그녀의 태도와 발언에 뭔가 한 방 먹은 기분이 들었지만 내색하지 않게 억지로 참으며 말했다.

“저희는 고객님의 건강과 심신이 맑아지고 좋아지도록 돕는 차를 전문적으로 취급합니다.”

그녀는 그 말을 듣고서 고민하다가 메뉴에서 하나를 고르며 말했다.

“그럼 이 차로 해주세요.”

그녀가 고른 차의 이름을 확인한 영영이 말했다.

“당귀차 한 잔, 주문받았습니다. 차가 나오려면 오래 걸리는데 괜찮으시겠어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영영은 미리 달여 둔 차의 상태가 어떤지 추출기 상태를 확인하러 주방으로 들어갔고, 이 차가 무엇일까 고민하며 메뉴판을 다시 쳐다보던 그녀가 영영에게 물었다.

“여기 당귀라는 재료가 피의 생성과 순환에 도움을 주고 여성분들에게 좋은 효능을 주는 약재라고 아주 조그맣게 설명되어 있네요?”

“네. 맞습니다. 손님.”

“아, 그래요? 이 차만 설명이 되어 있어서 고른 거였는데 그럼 저 잘 고른 거죠? 그렇죠?”

영영은 추출기의 내부를 확인하면서 들뜬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친절히 대답해주었다.

“예. 손님, 다행히 미리 달여 둔 게 있으니까 잠시만 기다리세요.”

“잠깐만요! 하나 더 고른 다음에 시킬게요. 음.”

그녀는 메뉴판을 보며 고민하다 선택이 어려운지 시선을 돌려 주변을 살피다 호기심에 차서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카페치곤 이상한 구조네요. 여기에는 테이블이랑 의자가 있다지만 저기 복도 쪽 방들은 뭐예요? 마치 식당 같아.”

“손님들이 앉으셔서 드실 수 있는 방이에요.”

“정말요? 그럼 여기에 앉을테니까 가져다 주세요!”

잘 됐다는 듯 신발을 팽개치고 여닫이문을 옆으로 젖힌 후 냉큼 들어간 그녀는 방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여있는 상 옆에 가방을 두고 주변을 돌아보다가 메뉴판 및 벽에 붙은 다도에 대한 방법과 순서가 그려진 벽면의 안내서를 발견하고는 주문을 받으러 영영이 다가오는 것도 못 느낄 만큼 의구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손님, 그럼 당귀차 말고 혹시 더 주문하실 것이 있으신가요?”

“아, 네! 어....... 이거 이름 예쁘다! 감국? 끌리는 이름인데 여기 이 감국 차도 한 잔 주세요. 근데 아까부터 어째 재료들이 다 한약들인 것 같은데, 여기 혹시 건강원은 아니죠?”

영영이 주방으로 다시 들어가 감국(甘鞠, 노란 빛을 띄는 재래종 국화)을 준비하고, 가스레인지에 추출액과 생 당귀를 담은 주전자를 올려두고서 점화버튼을 켰다.

“네, 당연히 아닙니다. 카페인걸요.”

“에이, 건강원이네요. 뭐, 한약재에 건강식에.”

“카페라니까요. 독특하게 한방차를 취급하는 것뿐입니다 손님.”

시간이 잠깐 지나서 영영이 팔팔 끊는 주전자를 들고 찻잔에 푹 우려낸 당귀 차를 담아내고 남은 건 다관(차를 우려내는 주전자 같이 생긴 다기)에 따른 후, 쟁반에 담아 그녀가 앉은 테이블로 다가가 다관과 찻잔을 보기좋게 놓으며 말했다.

“차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손님.”

벽에 등을 기대어 쉬고 있던 그녀는 심드렁하게 차를 한번 훑어보고는 영영에게 안내서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기에 직접 차를 달이는 방법들도 벽에 붙어 있네요. 사실 방안이 참 칙칙하지만요. 아, 죄송해요. 제가 좀 솔직해서, 이게 몸에 좋은 한약재를 달인 거라고 하셨죠?”

“뭐, 그렇죠. 맛과 향, 좋은 성분을 우려내는 거니까요.”

“그럼 보약이잖아. 그렇죠? 게다가 차에서 한약같은 냄새도 나니 딱 맞아 떨어지네요.”

영영이 그녀가 찻잔을 잡고 당귀차를 음미하는 걸 바라보며 말했다.

“비슷하긴 한데. 그게 저.”

“음, 마실 만한데, 그런데요. 물어봐도 될지 모르겠지만 궁금해져서 그러는데, 저는 궁금한 건 못 참아서요. 왜 한방약차를 전문으로 하세요?”

“전통 한방차에 대한 가치를 이 가게를 통해 알리고 싶어서요.”

영영이 머쓱한 듯 웃으면서 말하자, 그녀가 되물었다.

“요새는 커피나 허브 차, 아이스티 등이 추세잖아요.”

영영은 다소 오랜만의 여자와의 대화이기도 하고 이 화제에 대해 이렇게까지 말을 많이 해본적은 노교수 말고는 없었기에 더 반가웠다. 그래서인지 뭔가 정보를 더 제공해야겠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든 영영은 그녀를 향해 계속 입을 열었다.

“혹시 조선 시대 대 실학자 다산 정약용 선생님을 아세요?”

“예. 근데 생뚱맞게 그건 왜요?”

“다산이 백련사라는 절에 갔다가 그 주변에 야생 차나무가 자라는 걸 보고 친했었던 혜장 선사에게 찻잎을 세 번 찍어 세 번 곱게 말려 가루를 낸 후, 돌 샘물에 반죽해서 진흙처럼 짓이겨 작은 떡차로 만들라고 방법을 알려주는 대신 자신에게 완성품을 보내 달라고 했죠.”

그녀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영영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서요?”

그는 웃으며 찻잔을 가리켰다.

“마시면서 들어요. 차 식어요.”

“아! 그렇지.”

그녀가 찻잔을 들고 기울여 차를 음미하면서 영영에게 계속 말하라는 듯 응시하자, 영영이 자리로 돌아가 감국 차를 만들기 시작하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혜장이 막상 차를 만들긴 했지만, 너무 아까운 마음이 들었던 거예요. 그러다 혜장의 제자인 색성이 차 한 포를 다산에게 주었다는 걸 알게 되면서 다산의 부탁을 무시해버렸죠. 그러자 다산이 그 사실을 알고 노발대발해 당장 차를 내놓으라고 협박 편지를 보냈어요. 약속대로 차를 내어 놓으라고요.”

그녀의 얼굴에 흥미가 가득한 표정이 자리 잡으면서 허공에서 공간을 차지하던 찻잔이 탁자로 내려오며 오가는 말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와, 대박. 진짜요?”

“다산 뿐 만이 아니에요. 목은 이색 선생님은 송광사나 개천사 승려들에게 차를 선물 받고 다시(茶時)로 화답했었고 그중 하나가 개천사의 행제스님에게 영아차를 선물 받고 지은 시로 영아차에 대한 높은 평가를 담은 내용이죠. 그리고 추사 김정희 선생님도 동다송(東茶頌)이라는 차의 미덕을 노래한 대홍사의 초의 선사와 깊은 교우를 맺고 보내준 죽로차(竹露茶)와 차나무에 대한 답례로 반야심경을 한 질을 써서 보낸 적도 있었고 한편으로는 편차(片茶)라는 향이 짙은 청색 녹차를 초의가 보내주지 않자, 마찬가지로 협박편지를 보내기도 했어요. 야박하다며 인연 끊기 싫으면 밀린 차를 다 내놓으라고 대학자가 압박을 가한 거예요.”

혜미는 다 마신 찻잔에 다관을 기울여 차를 가득 담으면서 물었다.

“에이, 설마 일도 있었어요?”

“추사는 어린 찻잎으로 잎차를 만들어 준 향훈에게도 다정하고 공손하게 대했죠. 지리산 화개동의 화개차가 중국에서 으뜸가는 용정이나 두강차보다 낫다고 평하기도 하였고요. 그런데 당대의 대학자들이 차의 향과 맛을 물론 깊게 쳤었지만 왜 이토록 차에 관심이 강했는지 아세요?”

영영은 그렇게 물어보면서 그녀의 태도를 주시했다.

“저야 문외한이니 모르겠지만. 차야 양반들의 기호식품이자 사치품과 같아서 같은데요. 지금의 전문점 커피가 비싼 것처럼.”

“일리는 있지만, 그때는 중국에서 차를 구하기도 어려웠어요. 자국 내에서 다 소모해 버리니 타국으로 보낼 것도 부족했거든요. 일본도 고려되긴 했지만 결국 우리 선조들은 열심히 차를 기르는데 총력을 기울였고 그 중 희소가치가 있는 차는 기호식품이 아니라 약이였어요. 녹차의 카테킨성분이 그 당시 위험했던 병인 식중독을 예방했고 지혈이나 소독에도 효과적이였거든요. 게다가 카테킨 말고도 차의 좋은 성분들이 질병에 약하거나 걸린 사람들을 치료하고 건강을 되찾는 데 도움을 크게 줬죠. 동의보감에는 고차(苦茶)인 작설차(雀舌茶 어린 찻잎 모양이 참새의 혀를 닮았다하여 이름 붙여진 고유의 고급 녹차)에 대해 정신 진정과 소화를 도와 소변이 잘 나오게 하고 소갈증이 멈추어지며 머리와 눈을 맑게 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잠을 적게 해주며 뜸질하여 댄 독을 풀어준다고 되어 있으니까요. 특히 조선 후기 실학자 홍만선이 엮은 삼림경제 제3권에서는 머리가 아플 때는 차를 달여 많이 먹게 하여 토를 하게 하면 그 즉시 낫는다거나 모든 독기를 없애려 할 때 작설차 가루와 백반가루를 섞어 새로 길어온 물에 타 먹으면 효능이 있으며 버섯에 중독되어 토사가 그치지 않으면 작설차를 가루로 내어 물에 타 먹이면 낫는다고 적어 놓았어요. 그 외에도 차는 비리고 더러운 것을 씻어내며 포식하고 차를 마시면 좋다는 기록도 있죠. ”

“와? 정말요? 그거 다 외운거예요?”

영영은 그녀의 놀라다 못해 기겁한 표정을 즐기면서 말을 이었다.

“네, 정확히는 기본으로 알고 있는거죠. 어디까지 이야기했더라. 아! 초의 선사에게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조선 말기의 범해 스님은 세균성 이질에 걸려 고생하다가 차를 끓여 마시고 낫게 된 경험을 차약설(茶藥設)이라는 제목의 글로 남기기도 했어요. 그래서 다산과 추사는 방안에서 다독, 저작을 하는 정형화된 생활습관과 유배생활 등으로 건강이 좋지 않았던 자신들 뿐 만이 아니라 주변 백성들의 상비약으로서 병 치료를 위해 그렇게 차를 애지중지했던 거예요. 몸에는 건강, 머리는 맑은 정신을 가지게끔 도와주는 이 차들을 우리 조상님들이 이러한 이유로 그렇게 중요하게 여겼었던 거죠.”

영영의 말을 듣고 감탄한 그녀는 차를 음미하면서 놀란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말을 꺼냈다.

“이제보니 아저씨 말주변 있으시다. 그럼 아저씨는 진짜 건강식품이자 약을 파는 거네요. 비록 그 약을 사가는 사람은 없지만요. 풉.”

영영도 겉으로는 같이 웃었지만 그 와중에 눈치껏 그녀의 모습을 철저하게 탐색했다. 지퍼도 잠기지 않아 단색의 숄더백 안을 벗어나 있는 전공 서적들과 화려하지 않은 옷차림, 바쁜지 꾸미지 않고 수수한 외모를 보아 아마도 근처의 고학년 대학생임이 분명했다.

“어째 조건들이 건강원에 다 맞아 떨어지네요. 찾는 사람이 별로 없지, 약 팔지, 그렇다고 약국은 아니지. 한의원은 더욱 아니지.”

영영은 방긋이 웃는 그녀의 장난기 섞인 말에 당황하며 말했다.

“단순히 몸에 좋다는 것들을 성분 뽑아내고 달여내는 곳이랑은 좀 다르죠. 그리고 전문적으로 진료를 하는 곳도 아니고요. 엄연히. 여긴 전통과 역사, 문화가 숨 쉬는 현장이라고요.”

“아하, 그래요?”

기세등등해진 그녀는 영영의 난감한 표정을 즐기는 듯 하는 미소로 말했다.

“그런데 여긴 재료를 어떻게 납품받아요?”

“하하, 그건 영업 비밀인데요. 일단 원산지는 다 국내산입니다.”

“아, 손님이 궁금할 수도 있는 거죠, 소비자의 권리중 하나가 알 권리거든요!”

영영은 그 말에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무조건 현지 또는 현지 배송으로 직, 간접적으로 좋은 재료만을 가져오죠.”

“우와아! 완전 유기농 웰빙이네. 어? 그런데 왜 여기 차를 사람들이 안 마셔요? 그렇게 몸 챙기기 바쁜 요즘 시대에요? 가격도 비싼 다른 카페 커피 값에 비하면 훨씬 몸에 좋을 텐데.”

‘그러게요.’를 자신도 모르게 내뱉으려고 했던 영영은 자신도 잘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응했고 그녀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집요하게 물었다.

“몸에도 좋고 카페인도 커피처럼 들어 있으니까 힘들 때 마시면 건강도 챙기고 피로도 잊어질테니 이렇게 손님이 없어서 덩달아 매출이 없어도 정신적으로 마음도 단련하고 좋을 것 같은데요?”

계속 휘몰아치는 그녀의 질문 공세를 어느 정도 억제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영영은 재빨리 완성된 감국차를 내왔다.

“전공 서적들이 좀 많네요. 대학생들이 서적을 다 들고 다니는 건 잘 못봤는데 사물함 신청을 못 하셨거나 바쁘신가 봐요?”

그러자 그녀는 머리를 긁적이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고 대답했다.

“아, 학비 때문에 알바를 좀 많이 하면서도 공부하려고 항상 밤을 새우느라 늘 상 피곤하거든요. 그래도 다행히 이번에 같이 사물함 쓸 후배를 구했으니까요. 이제 이 책들도 다 넣어두려고요. 피곤함에 절여살다보니 사실 커피랑 자양강장제가 저의 혈액이자 수분이나 다름없었는데 여기 차도 앞으로 고려해 봐야겠어요.”

영영이 혜미가 당귀차를 그 와중에 다 마신걸 보고 눈치껏 말린 감국과 뜨거운 물이 담긴 탕관[각주:1], 다관[각주:2]과 큰 그릇, 그리고 찻잔을 담은 쟁반을 가져와 그녀의 앞에 차려놓자, 그녀는 감국을 유심히 바라보며 말했다.

“노란 국화네요.”

“야생에서 자라는 토종 국화의 고유 품종이죠. 일단, 처음이신거 같으니까 마시는 방법을 알려 드릴께요."

영영이 탕관의 뜨거운 물을 다기와 찻잔에 붓고서 곧바로 그 물을 큰 그릇에 비우자, 혜미가 의아해 하며 물었다.  

"응? 왜 부은 물을 거기다 비워요?"

"이 그릇은 퇴수기라고 해서 찻잔에 예열한 물을 비우는 거예요. 자 이걸 이렇게 하면.”

 다기의 다시 부워진 뜨거운 물에 담궈지자 마자 풀어 헤쳐지는 감국의 노란 빛을 바라본 혜미는 감탄하며 말했다.

“와! 노란 빛이 은은한 차 색깔이 마치 달빛 같네요."

그는 웃으며 찻잔에다 재빨리 우러나온 차를 모두 담아내었다.

"뜨거운 물에 꽃을 오래 담구면 꽃에서 쓴맛이 우러나올수 있으니까 찻잔에 담아 드세요. 이 주전자같이 생긴 탕관에 물이 다 떨어지면 부르세요. 리필해 드릴게요."

"네, 근데 왜 당귀차는 이렇게 안 해줘요?"

"당귀차는 당귀 자체가 두께와 부피도 있고 내용물도 오래 끓여내야하다보니 이렇게 다도와 차를 우리는 방법인 행다법(行茶法)에 맞게 하기 보단 미리 준비되어있는 편이라서요."

혜미는 다 마셔서 빈 다관과 당귀차 자국만이 남은 찻잔을 치우는 영영을 보고 미안한 말투로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으흠, 그렇구나, 죄송하지만 이미 당귀차를 마시고 있어서 그러는데 이건 테이크아웃해 주세요. 이럴줄 알았으면 당귀차를 먼저 시켰을 텐데."

그러자 영영은 괜찮다는 듯  미소와 말로 화답했다.

"저희는 전통 방식을 고집하기 때문에 테이크 아웃은 지원해 드리지 않습니다. 손님."

"에이, 아쉽게. 그래도 예쁘니까 이건 따로 키핑해 가져갈께요.”

그녀가 가방에서 빈 보온병을 꺼내 차를 담은 후, 일어서면서 숄더백을 메고 자리를 떠나자 영영이 놀라 말했다.

“어디 가세요?”

뭘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한 대답이 영영의 귀를 향해 날아들었다.

“다 마셨으니 계산해야죠.”

“아, 아! 예.”

영영이 그렇게 카운터에 선 그녀 앞에 서서 현금 지급기의 문을 열고 계산을 돕던 도중 생각지도 못한 탄성이 그의 귀를 강타했다.

“우아아아! 아저씨 짱이다! 대박.”

“왜 그러세요. 손님?”

그녀는 카운터 한구석에 있는 영영의 바리스타 자격증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저씨 바리스타였어요? 어, 그런데 커피는 안 만드시네요. 어쩐지 복장부터 남다르더니.”

“자꾸 아저씨라고 하시는데. 스물여섯이면 그래도 젊거든요. 난 결혼도 안 했어요.”

그는 사실 아까부터 자신의 반박에는 아랑 곳 없이 일방적으로 들어오는 그녀의 질문들이 정말로 당혹스러웠다.

“그런데 아저씨는 커피는 안 만지고 왜 차를 만져요?”

민감한 질문이라는 것을 표현하듯 그 즉시 눈매가 매서워진 영영의 얼굴에 놀란 그녀는 알았다는 듯이 미소 지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휴, 카페 매니저님은 왜 커피는 안 만지시고 차를 대하세요? 전자가 더 전문이지 않나요?”

그러자 그가 고민 많은 얼굴로 한숨을 한번 쉬고 대답했다.

“말했잖아요. 정리하자면 좋은 한방차를 다른 사람들에게 제공하여 그분들의 건강도 지켜드리고 전통 한방차와 다도 및 차 문화를 알려서 인식도 좋게 하고 대중화에 기여하겠다는 포부로서 평생 배운 바리스타에서 벗어나 마치 무림에 서서 도 닦고 무를 연마하는 한 명의 검객처럼 시작했죠. 하지만 인지도도 떨어지고 거리감이 있어서 그런지 연륜이 없는 젋은 사람들에게는 낯설다고 겉돌 뿐이고 특히 직접 시간에 걸쳐 우려내는 점과 차의 카테킨 성분이 내는 쓴맛과는 다르게 카페에서 파는 커피같은 메뉴들이 비교적 빠른 제조 시간과 달콤함, 부드럽다는 점을 더 선호하고 익숙해져 있는지라 받아들여지기엔 어려움이 많죠. 보다시피.”

영영의 진지한 말을 들은 그녀는 당당히 말했다.

“카페 매니저님의 말씀은 잘 들었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아메리카노나 에스프레소 같은 쓴 커피도 잘만 사 마시잖아요. 오히려 즐기고요. 시킨 메뉴가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미리 이야기 해주면 미리 예약을 하고 찾아오거나 참을성 없는 손님이 아닌 이상 크게 따지지는 않을 걸요? 게다가 제 경험상 건강과 관련된 식품들은 이렇게 인지도가 낮거나 일정 된 소요 층을 가지지 못하는 경우가 없는데 말이죠, 특히 아무리 겉모습뿐이라도 이런 카페는 더더욱.”

영영이 조용히 그녀를 무표정으로 응시하자 그녀는 그러건 말건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어쩌면 아저씨는 이 가게 이름처럼 무림에 파묻혀서 혼자 무예나 익히며 세상의 흐름과는 단절된 무사처럼 살아가는 게 아닐까 싶은데요?”

영영은 그녀의 당돌함에 대해 난색을 한 얼굴로 답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과 표정에서 자신감과 확신이 차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아, 아닌가? 적어도 무사는 대적할 상대를 찾아 세상을 떠도니까 아저씨보단 나으려나?”

그녀가 그의 반응을 유도하듯 깐족거리며 말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 가게가 추구하는 건 아니, 제가 여기서 추구하는 건 다도를 제외한 현대적 카페에서의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차 문화죠. 즐기는 사람이 많든 적든 저는 제 소신대로 지켜나갈 겁니다.”

“알았어요. 핏, 고집은.”

그녀는 거스름돈을 건네받은 후, 지갑에 넣으며 말했다.

“하지만 카페 매니저 아저..님. 이렇게 손님이 없으면 그 가게는 죽은 가게에요. 이 가게 이름이 ‘점포임대’가 될지 모른다고요. 아 참, 이거 악담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시고요. 그러니까 마치 동영상을 사이트에 올렸는데 조회 수가 몇 달 되도록 조회 수 두 자리로 그치는 꼴이잖아요. 무슨 보람이 있어요? 근데 그게 생계수단이면...... 어휴, 끔찍해. 사실, 수익이 손익분기점에 맞을지 모르겠지만, 가게의 존재 자체는 돈이라고요. 사람이 기본적으로 필요한 욕구를 채워주는 원초적이고도 경제적인 생산 수단 말이에요. 아니, 생각해봐요. 삶 자체부터가 돈이 드는데, 내가 더 발전하려면 반드시 시간 말고도 돈이라는 비용이 들고, 지금 고속 경제 성장을 책임졌던 기성세대도 은퇴해서 창업하고 젊은 사람들도 실업에 고생하고 폐업만이 넘쳐나는 불경기지만 먹고 사려고 창업을 하는 현재 경제 상황을 보면 다 마찬가지잖아요. 어떻게든 손님을 끌어 모으고 돈을 벌기 위한 더 좋은 상품, 더 많은 인지도 광고들, 더 넓은 점포들 말이에요. 햐, 답답해서 말도 제대로 안 나오네. 지금 굉장히 방대하게 설명한 것 같은데 그러니까 축약해서 제 말이 뭐냐면 좀 아쉽고 아깝다고요. 여기가 무척이나요.”

그가 그녀에게 무슨 상관이냐는 듯 말했다.

“그래서 제 소신대로 하는 겁니다. 돈에 연연하지 않는다. 이윤추구는 옳지 않은 것도 함부로 수용하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죠.”

그녀는 고심하는 표정으로 영영을 뚫어지게 바라보다 답답한지 깊게 심호흡을 하며 주변을 한번 길게 한 바퀴 돌아보면서 구석구석 살펴 본 후,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카운터 위에 방치된 그의 명함을 꺼내 들며 말했다.

“옳지 않음이라, 그 기준도 주관적인 것 같은데요. 자판기 아저씨.”

“예?”

갑작스러운 그녀의 말과 행동에 놀란 영영이 깜짝 놀라며 말을 이었다.

“내가 왜 자판기에요?”

그녀는 태연히 대답했다.

“자판기는 동전을 넣고 원하는 차 버튼 누르면 차를 주죠?”

“그렇죠.”

“영영씨도 돈을 주고 차를 선택하면 차를 내오죠?”

“네.”

영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마무리를 찍었다.

“그거예요.”




그는 잠깐 멍해 있다가 의미를 이해하자 발끈하며 말했다.

“이거랑 그거랑 같아요? 내가 어떻게 뜨거운 물에 대충 가루 섞은 차나 종이컵에 담아 내놓는 기계에 비유되느냐고요!!”

“원리는 똑같잖아요.”

영영은 더욱 발끈하며 말했다.

“그 문제가 아니라 비교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요.”

그녀도 괜히 짜증을 내며 말했다.

“아, 몰라요. 이거나 저거나 입에 착착 감기는데요. 뭐, 우리끼리의 별명 같은 걸로 해둬요.”

“아니,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긴 그런 고집도 있어야죠, 오늘 마치 알려지지 않은 무림의 숨은 고수를 이제 안 기분이네요. 저만의 흥미 대상이 되셨는데, 일단 본인에게 자축하시고, 제가 앞으로 어떻게든 잘 도와 드릴게요.”

그녀는 주변을 곁눈질하며 금방이라도 한숨 나올 난처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손길 많이 가겠다.”

“하하. 저기, 손님!”

영영이 뒤돌아서 명함을 주머니에 넣고 현관문으로 나가려는 그녀를 보고 헛웃음을 짓다가 정색하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자, 제 이름은 손님이 아니라 혜미예요. 뭐 이제 저도 자판기 아저씨라고 부를 거니까 상관없으려나, 안녕히 계세요.”

영영은 그녀가 그렇게 말하고 밖으로 나가자 현관문을 열고 외쳤다,

“저기 손님! 그게 무슨 말이신지? 손님!”

어느새 어두워진 하늘에는 구름 사이의 달이 그 빛을 발하고 있었고, 현관을 나선 그녀는 빠르게 걸어가면서도 그를 보고 손을 흔들며 말했다.

“다음부터 저 이 집 단골 될 테니까 앞으로 이름 불러주세요. 아셨죠?”

“아니, 그건 또 무슨 뜻이에요? 손님!”

그렇게 몇 번 더 외친 영영이 그녀가 인파 속에서 사라지고 길가를 걸어가던 많은 사람이 무슨 일 있는지 혜미를 부르던 자신을 주목해서 바라보는 것을 느끼자마자 대피하듯 황급히 가게 안으로 들어간 다음, 의자에 앉아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가 기억을 돌이켜보며 조심스럽게 정리해 보았다.

혼란스럽지만 확실한 건 서로 통성명은 제대로 한 셈이었다.



  1. 湯罐, 다도(茶道)에서 쓰이는 뜨거운 물을 담는 다구(茶具)로 다리가 달린 차솥인 茶鼎(다정), 다리가 없는 다부(茶釜), 주전자 모양의 철병(鐵甁)이 있다. [본문으로]
  2. 차를 우려내는 주전자 같이 생긴 다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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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찻집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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