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다시 큰 가방을 메고 가게로 쳐들어온 그녀를 탐탁지 않게 쳐다보던 영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늘은 어딜 손볼 거죠?”

그녀는 말없이 가방에서 둥글게 만 종이를 하나 꺼내서 영영에게 건네주었다.

"서울자영업자 업종지도를 왜?"

영영이 펼쳐든 종이에는 외식업 등 다양한 업종이 수치와 그래프로 표시된 데이터 자료들이 인쇄되어 담겨있었고 혜미는 그것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저씨에게 경각심 좀 일깨우려고요."

영영은 그 말에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무슨 경각심? 주변에도 가게들이 많다는 건 충분히 느끼고 있어요."

"아저씨에게 드린 건 서울시랑 서울신용보증재단이 만든 자영업 분포지도에요. 타지방이 없는 것이 아쉽지만 사람 밀집도가 높은 서울에서 커피와 차를 다루는 카페가 엄청 많이 있는 거 보이죠?  더구나 이 수치도 급증하고 있는 거예요. 40~50대 층이 은퇴하거나 창업전선에 뛰어들 때 큰 부담 없이 고를 수 있는 업종 중 하나가 카페니까 더 말할 필요가 있나요? 이런 자유경쟁 체제... 뭐 엄밀히 따져서 자유경쟁이라고 하지만 결국 잘 되는 메이커 아래로 들어가거나 남이 잘 되는 거 카피하는 거지만요. 제가 이렇게 가게 분위기를 내부 디자인이랑 인테리어로 살려놔서 손님들을 좀 끌어 모이면 주변에 있는 손님이 부족한 카페들이 다 따라 할걸요. 결국 외적인 부분에서 독특한 가게의 개성을 오랫동안 나타내기도, 그것을 손님을 끌어모으는 고유적인 경쟁력으로 쓰기도 힘든 게 현실이에요. 독창적인 게 하나의 케이스가 되어 우후죽순으로 늘어나면서 그 독창성을 잃어버리는 거죠."

"아니 근데, 보자마자 웬 횡설수설이에요? 요점이 뭔데요."

혜미는 웃으면서 주먹을 쥔 후, 집게손가락만 펴서 좌우로 손을 흔들다가 재빨리 영영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지만 어차피 주변 상권조사도 들어가겠지만 그런 주변 가게들이 따라 할 수 없는, 아저씨 가게만의 손님을 끌어모을 고유한 개성이자 다른 가게와 대등하게 싸워 이길만한 강한 경쟁력이 여기 있죠."

영영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자신을 가리키며 묻자 헤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아저씨. 아저씨의 차에 대한 애정과 전문적 지식! 그 머리에서 나오는 차에 대한 고찰과 연구, 해박한 차(茶) 상식은 다른 가게가 카피할 수 없죠. 손님들에게 그런 점을 어필하면 손님들이야 전문가를 누구나 찾기 마련이니 차의 전문가인 아저씨를 어느 가게보다 먼저 찾아오게 될 거라는 거죠! 그러기 위해선 외적인 부분에서 인지도를 끌어서 기틀을 마련하는 거고요. 그러니 아저씨는 차에 관한 지식을 자상하게 손님들에게 이야기해주고 계속 지금처럼 차를 애정으로 대해주시면 돼요."

혜미의 말에 영영이 말없이 바라만 보자 그녀는 겸연쩍은 듯 창고 쪽으로 가서 말했다.

"자자, 그러기 위해서 오늘도 손 봐야 할 것이 많네요."

그리고는 한구석에 박아 놓았던 사다리를 들고 오더니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채 메뉴판을 자리 잡은 거의 비어 있다시피 한 칠판 밑에 두고 주머니에서 흰 분필을 꺼내며 말했다.





“손님이 생소한 차를 시키려면 이 집 메뉴들 적어야 하잖아요. 큰 범주부터 하나씩 불러 봐요.”

영영은 황당했지만 에라 모르겠다는 눈치로 말했다.

“범주요?”

혜미는 사다리 위로 올라가 분필을 집고 쓸 준비를 하며 말했다.

“차가운 음료, 뜨거운 음료 이런 것처럼 카테고리 같은 거 있잖아요.”

영영이 자신을 내려다보는 혜미에게 팔짱을 끼며 말했다.

“차는 차와 대용차로 구분돼요.”

그 말을 들은 혜미는 난감해하며 되물었다.

“무슨 소리죠?”

“찻잎을 가공해 우려낸 녹차, 엽차 같은 것들만 차라고 부르고 보리차, 둥굴레차같이 찻잎이 아닌 걸로 우려낸 것은 차를 대용하는 음료라 하여 대용차라고 불러요.”

영영은 혜미의 얼굴에서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아리송한 표정을 읽었지만 잘 모르겠거니 하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무튼, 알았어요. 큰 범주는 차와 대용차, 그럼 여기서 취급하는 차는 몇 개예요?”

“녹차 한 개요.”

혜미가 황당해하며 쳐다보자 그는 어쩌라는 듯 덤덤한 표정으로 응했다.

“아니, 그 넓은 범주에 녹차 하나가 달랑 끝이에요?”

“네, 흑차로 불리는 보이차나 청차로 불리는 우롱차는 중국 같은 외국에서 많이 취급했고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녹차의 소비가 많았으니까요.”

혜미는 난처한 듯 잠깐 멈춰 있다가 칠판에 차라는 글씨 밑으로 녹차를 쓰고는 말했다.

“알았어요. 취급하는 게 하나라 이거죠? 참, 녹차도 차가운 것도 있고 뜨거운 것도 있을 거고, 가격도 있을 거예요. 그걸 다 말해줘 봐요. 내가 지금 다 써 놓을 거니까요.”

영영은 이게 무슨 말인가 당황스러웠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흔히 보는 칠판으로 손님들에게 친숙함을 주기 위해 레스토랑이나 카페 같은 다른 가게들에서 주로 쓰는 메뉴판 콘셉트임을 이제서야 알아차리며 말했다.

“저기 철거한 메뉴판에 적힌 걸 그대로 따라 적어도 될 것 같은데.”

“그거 몰라서 그런 것 같아요? 영영 씨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손님들 건강이라고 하셨죠? 이 메뉴판은 다양한 차 메뉴 말고도 그 차가 어떻게 몸에 좋은지 자세히 쓸 거예요. 그리고 가방에 담아 가져온 제 노트북으로 차들의 하나하나마다 정보와 효능에 대해 PPT를 만들어 인쇄하고 코팅해 눈에 잘 보이는 것에 복잡하지 않도록 잘 부착할 거고요. 특히 오늘의 특별한 차나 제철에 맞는 차 종류도 적어야하니 정보를 좀 제공해 주셔야겠어요. 차에 관해선 전문가이시니 무리 없으시겠죠?.”

혜미가 그렇게 말하자 내심 전문가 소리에 기분이 좋아져 수긍한 영영이 정보들을 불러주기 시작했고 그녀는 듣는 대로 적어나갔다,

“그리고 우리 집은 잎차와 가루차,떡차 방식을 사용해요.”

“그건 또 뭔데요?”

“잎차(葉茶)는 그냥 찻잎을 최대한 원래 모양으로 보존하면서 볶거나 찌거나 발효시켜 달이는 방법이고 말차(抹茶)라고 불리는 가루차는 잎차보다 그 역사가 깊고 고려시대때 유행했던데다가 절을 통하여 시대의 흐름을 이어왔고 방법도 맷돌에 직접 갈았었는데 뭐 그 의미만 들어도 알테니 넘어가고 병차(餠茶)라고도 불리는 떡차는 시루에 넣은 찻잎을 열기로 인한 증기로 쪄낸 후, 떡처럼 찧어서 짓이겨내고 그 반죽을 틀에 넣어 모양을 내는 방식이에요. 전자는 조선 시대 때, 후자는 삼국시대부터 유래된 방식이죠. 고려 때에는 뇌원다(腦原茶), 유다(孺茶), 청태전(靑苔錢) 등의 떡차가 있었고 그 형태에 따라 돈차(錢茶), 병차(餠茶)등으로도 불리죠.”

혜미는 영영의 말을 들으며 녹차 옆에 잎차, 가루차, 떡차 방식이라고 적고 또 그 옆에 조선 시대에 성행한 방식, 고려 시대 성행한 양식 그리고 삼국시대부터 성행한 방식이라고 작게 쓰면서 말했다.

“예전에 바리스타라고 하셨죠?”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혜미가 영영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녹차 밑에다가 바리에이션으로 녹차라테를 적자, 영영이 놀라서 물었다.

“그건 왜 적어요?”

“바리스타이셨으니까 이쯤은 만들 줄 아시겠죠?”

영영은 당황하며 그녀에게 다가가 말했다.

“만들기야 쉽지만, 이건 전통 한방차랑 대비되잖아요!”

격한 반응을 보이는 영영을 내려다보는 혜미는 태연히 말했다.

“영영 씨네 카페에서 취급하는 녹차 원료는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키우던 최상품 맞죠?”

“그건 맞죠. 내가 직접 골랐으니까.”

“그럼 그 녹차 원료를 직접 갈아서 우유에 섞어서 라테로 만들 수도 있잖아요. 거기에다가 녹차를 좀 더 첨가하고요. 여기 녹차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들죠?”

“뭐, 추출기를 썼으니 전통방식이 아니지 않으냐 하는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저희 집의 녹차는 특히 각별하게 다기를 통한 전통방식에 가깝도록 우려내니까요. 시간이 많이 들어서 문제지.”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혜미는 뭐가 문제라는 식으로 일침을 날렸다.

“그럼 뭐가 문제에요. 원료부터가 전통적 문화를 지켰으면 됐잖아요. 만드는 과정을 사진으로 찍어서 잘 보이는 곳에다가 붙여두거나 동영상으로 보여주면 손님들도 이해함과 동시에 가공된 녹차 가루 원료를 우유에다가 섞는 다른 카페들보다 훨씬 더 믿음직스럽고 만족할걸요! 생 찻잎을 달여 만든 녹차를 우유에 섞었는데!”

영영이 잠깐 멈칫하며 잠시 생각에 들어갔다. 생각해보니 그 말도 일리가 있긴 있었다.

“알았어요. 적어요.”

“효능은요?”

영영이 멈칫하며 책을 꺼내 페이지를 살피자 혜미는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비타민C와 체내의 독소에 관한 해독작용. 이뇨작용 촉진, 지방의 흡수율 저하 밑 사용률 촉진. 성인병 예방 및 피로회복, 노화방지, 숙취 해소 등이요. 사실 이보다 더 많을지 모르지만, 확실히 아는 건 이거예요.”

“와! 그거 다 안 외우신 건가요?”

“내 머리가 무슨 컴퓨터도 아니고. 이 많은 차의 설명을 각각으로 어떻게 다 외워요!”

“어휴, 내가 참아야지. 어쨌든 많기도 하네요. 이런 걸 강조해야 요즘 건강 챙기는 사람들이 구매하는 거죠. 홍삼이 아무리 좋아도 그 홍삼이 무슨 효능이 있는지 모르는데 어떤 사람들이 홍삼을 찾아요?”

혜미와 영영은 한쪽이 정보를 제공하면 한쪽은 메뉴와 그 내용을 쓰는 일을 주고받으며 메뉴판들을 작성했다.

“자, 대용차 중 둥굴레차 효능 말해 봐요. 책 보지 말고.”

영영이 자신 있다는 듯이 대답했다.

“둥굴레는 폐를 윤택하게 하며 비장을 보호하고 무기력한 증상을 완화시키며 안색과 혈색을 좋게 하고, 기력이 약할 때 좋죠.”

자, 그다음, 감국 차는요?”

그는 눈치를 보며 서고에서 오래된 공책을 꺼내 원하는 내용이 적힌 페이지를 찾은 후, 말했다.

“오랫동안 복용하면 혈기에 좋고 몸을 가볍게 하여 머리와 눈을 맑게 하고 위장을 편안하게 하며 몸이 냉한 사람을 따뜻하게 해주는 효능이 있다고 중국 명나라 때의 이시진이 그 당시 약초학에 대하여 연구를 집대성한 책인 본초강목에도 적혀 있고, 콜린, 스타키드린, 프린, 베타인, 아데닌, 비타민A, 비타민B1가 풍부하며, 피부 노화 방지가 탁월하며 기침, 인후통, 어지럼증, 현기증 해소에도 도움을 주죠.”

혜미는 하나하나 받아 적으면서도 영영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젠 그냥 커닝하시네요?”

영영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뭐, 말했다시피 제 머리가 컴퓨터는 아니잖아요. 까먹는 것도 있으니까요.”

“알았어요. 그럼 감국의 효능 좀 제대로 말해줘요. 기억나는 것보단 책이 더 정확하겠죠.”

그 말에 기분이 나빠진 영영이 짜증을 내며 말했다.

“감국은 국내산 국화고요.”

혜미는 감국 차 옆에다가 국화라는 글씨와 그림을 그리고 영영이 불러준 효능들과 가격, 아이스나 쉐이크같은 바리에이션들과 그 가격들도 적었다.

"가격은 저가 카페가 아닌 다른 메이커 카페들의 일반적의 커피나 차 가격이랑 다를 바는 없네요."

영영은 혜미가 적으면서 푸념하듯 말하자 충실히 대답해주었다.

"하지만 원가들이 비싼 편이라 팔아서 이윤이 안 남는 건 아닌데 살짝 애매하네요."

"에이, 그럼 유통기한 긴 것들은 한번에 대량 구매라도 해서 원가를 좀 줄여봐요. 아니면 좀더 저렴한 거래처만 구해도 마진을 높힐텐데."

"워낙 전국 각지의 좋은 재료들만 직접 가져오고 공수해서 쓰다보니 원가가 비싼게 당연하죠. 받은 재고 중에는 국립농수산품질관리원에서 유기농 마크를 받은 곳도 있으니까요. 좋은 차를 위해서 좋은 재료에 돈 쓰는 건 당연한거 아닌가요?"

“뭐, 맞는 말이긴 하네요. 손님이 늘어나지 않는 이상 재정적으로는 잘 모르겠지만요. 아저씨네 가게이고 아저씨의 의견은 저도 마음에 드니까 일단 존중할께요. 특히 방금 하신 말은 신용을 위해서 잘 보이는 곳에 적어서 재고 영수증이랑 같이 붙여놓거나 손님들에게 꼭 이런 부분에 대해서 말해주시고요. 그 다음은요.”

“모과차요.”

혜미가 그 밑에 모과차를 적고 영영을 쳐다보자, 영영은 자연스럽게 공책에 적힌 효능에 대하여 말했다.

“발열 제거, 소화효소 분비를 촉진해 신진대사를 좋게 하고, 기관지보호에 효과적이며 사포닌, 사과산, 구연산, 비타민C, 플라보노이드가 풍부해 피로회복과 감기 예방에도 좋고, 임신으로 인한 입덧, 설사병과 피부미용 또는 혈당을 조절하는 효능이 있어요. 모과 자체가 본초강목에서도 주독(酒毒)에 좋고 속에 울렁거릴때 먹으면 좋다라고 나왔고요. 동의보감에서도 소화에 좋고 이질등을 겪고 난 뒤의 갈증에 좋다고 나와있어요. 하지만 이 모과도 변비라든지 심장질환이 있는 분들에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이분들은 드시지 말아야 한다고 하네요.”

혜미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적은 것들을 다 지우며 말했다.

“무슨 차마다 그렇게 효능들이 넘쳐 흘러요?”

영영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래서 한방약차죠. 그런데 지금까지 적은 걸 지워요? 아깝게.”

혜미도 아깝다는 투로 말했다.

“글씨 사이즈 조절 좀 하려고요. 이러다간 메뉴 다 적기 전에 메뉴판 터지겠으니 말이에요.”

영영과 혜미는 그렇게 메뉴들과 그것들에 맞는 가격들을 적어 나갔고, 모든 메뉴가 적힌 뒤에도 공간이 남자, 혜미가 고민하며 말했다.

“나머지 공간에는 뭘 적지?  혹시 여기 사이드 메뉴가 있어요? 디저트 같은. 뭐, 와플이나 허니 브래드, 머핀 같은 거요.”

“비슷한 건 있었죠. 다과상에 오르는 한과나 떡 같은 거요.”

자신의 말에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혜미를 고개를 들어 우러러보던 영영은 왜 그러냐는 듯 쳐다보았다.

“지금 장난쳐요! 그렇게 좋은 아이템을 왜 이제야 말하는 거예요!!!”

발끈하는 혜미에게 그가 웃으며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당연하죠. 나한테 물어봤어요? 안 물어보니까 말할 필요가 없잖아요.”

순간 매우 허탈했는지 헛웃음을 짓는 혜미는 황당해 하며 말했다.

“허, 어히유, 정말 누구는 남의 가게 살려준다고 물심양면 도와주는데 그쪽은 계속 이렇게 비협조적이에요?”

“비협조적은 무슨,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고 있는데요, 뭐. 오히려 누구는 남의 가게가 자기 가게인줄 알고 뜯어 고치지만 그걸 허락해준 주인 누구는 참 자비로운 거 아닌가 싶은데?”

혜미는 미소로 말하는 영영의 말을 듣고 끙하며 말했다.

“메뉴나 불러 봐요. 이런 소모전은 시간 낭비 같으니까.”

“약과, 증편, 송편, 절편 등이요. 나머지는 제가 기술이 부족해서 아직 못 만들어요.”

“알았어요.”

혜미는 영영이 불러준 가격까지 다 적은 후, 사다리에서 내려와 자신의 가방에서 스마트 폰을 꺼내 메뉴판에 적힌 차들의 효능들을 찍으며 말했다.

“가장 중요한 건 건강식품에 대해 믿음과 만족을 주는 거예요. 이게 마케팅의 기본이죠. 영영 씨네 가게에는 이런 게 전혀 안 되어 있으니까 우선적으로 인테리어부터 친숙함을 주기 위해 손본 건 좀 이해해주세요. 그리고 영영 씨가 노력해 주셔야 할 것도 있고요.”

“그게 뭔데요?”

혜미는 자신의 스마트 폰을 보여주며 말했다.

“스마트 폰은 있죠?”

영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혜미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 전화번호와 메일을 가르쳐 줄 테니 그쪽이 알고 있는 차에 대한 정보들의 모든 걸 첨부파일로 보내주세요. 차에 대한 역사, 문화, 종류, 효능 싹 다요.”

영영이 애매하다는 심정의 표현으로 머리를 긁적이다 고개를 끄덕이자, 혜미는 카운터에 있던 펜을 집어서 종이에다가 자신의 이메일과 휴대폰 번호를 적고는 가방을 챙긴 후, 영영에게 바싹 다가가 말했다.

“꼭 오늘부터 계속 보내주셔야 해요. 그리고 이제부터 연습하셔야 할 것이, 제가 처음 방문했을 때 정약용 선생님과 목은 이색 선생님, 김정희 선생님의 차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셨잖아요.”

“예, 그랬죠.”

혜미는 탄성을 지르며 말했다.

“바로 그거예요! 손님들이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차에 대한 정보와 함께 관심을 끌게 되고 덩달아 차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지며 친숙해지게 되죠, 게다가 판매자가 자상하고 박식하며 신경 써주는 듯 하는 책임감도 주고요. 이런 재료의 원산지, 조리법, 차에 대한 사례 같은 정보들을 저한테 꺼냈던 것처럼 적절한 상황에 꺼내도록 노력하세요."

영영이 그건 또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짓자 혜미는 신신당부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들이대면 손님이 이야기를 들을 시간이 없으시거나 기분 나쁘실 수 있으니까. 적당히 눈치껏 접근하세요. 뭐, 전통차에 대해서 잘 모르실테니 오히려 손님들이 아저씨에게 물어 볼 거라고 생각은 들지만요. 아셨죠? 내일부터 실천이니까요. 참, 또 분명히 말해두지만, 효능만 강조해서 외우진 마세요. 그 점도 진짜 약장수나 건강식품 통신판매원 같아서 반감을 보일 수도 있고 역으로 패스트푸드가 몸에 안 좋아도 사람들은 잘만 사 먹으니까요. 지인에게 이야기해주는 것처럼 자연스럽게하시고요."

영영이 질린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계속 끄덕이자 혜미는 거듭해서 강조했다.

"그리고 만약 재료 살 때 현지 농장가시면 그곳에서 사진들을 최대한 많이 찍고 최신날짜에 찍은 걸 잘 보이는 데 재료 원산지와 유통기한까지 같이 표시한 후, 붙여서 손님들에게 신뢰감 주게 해 놓으세요.”

그녀의 길고 긴 말이 끝나자 영영은 ‘도대체 이 여자는 정체가 뭐지.’라는 심경과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 근데 내일부터라뇨? 뭐를.”

“그건 내일 알게 될 테니까, 신경좀 써주시고요  전문가답게 자세한 자료 꼭 빠른 시일안에 제 메일로 보내주시고요! 아, 휴대폰 좀 주실래요? 잠금 풀어서요,"

영영이 귀찮은 듯이 잠금해제한 스마트폰을 건네주자 혜미는 영영의 폰에 자신의 메일과 휴대폰 번호를 입력해 저장시키고 통화버튼을 눌러 전화를 걸었다 바로 끊은 후, 돌려주었다.

"자, 이제 메일 주소도 드렸고 전화번호도 서로 알고 다 되었네요. 이제부터 손님들에게 하실 이야기 같은 건 미리 복습, 예습 꼭 해놓고 쓸만한 일화나 지식 레퍼토리들을 열심히 찾아서 확장해 주세요.”

“뭐, 그런데 질문 하나만 해도 돼요?”

영영의 말에 나가려던 혜미가 뒤를 돌아보았다.

“왜 그러세요?”

“젊은 여대생이 공구를 만지질 않나! 손수 실내장식 그림을 그리는 등 작업에 능한 것 같은데 도대체 뭘 하고 다니길래. 아니, 그전에 이런 걸 다 어디서 배운 건가요?”

당혹스러운 영영의 표정과는 달리 혜미는 미소를 짓고는 가게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그건 제 프라이버시에요. 그럼 가 볼게요.”

그는 당황하며 그녀를 따라 걸어가며 물었다.

“잠깐, 내가 질문했잖아요! 그럼 답을 줘야지!”

거리로 나온 혜미는 현관에 기대어 자신을 바라보는 영영을 웃으면서 바라보다가 뒷걸음치면서 말했다.

“우리가 언제 프라이버시 공유하던 사인가요? 그럼 가 볼 테니 내가 말한 것들은 다 하셔야 해요.”

그 말이 끝난 후, 완전히 몸을 돌려 나가려는 혜미의 팔을 붙잡아 당긴 영영은 당황해 하는 혜미에게 말했다.

“아잇! 지금 이게 뭐하는 거예요!”

“그래도 일하고 가는데 새참도 먹고 목도 축이고 가야지! 잠깐만 기다려요.”





영영은 혜미를 의자에 앉게 한 후, 냉장고를 뒤져 꺼낸 간식용 떡을 데피고 구기자차도 재빨리 한번에 달여서 찻잔에 담아 떡과 함께 접시에 담아 혜미에게 주었다.

“에!! 어디 여자 팔을 함부로 잡아당겨요! 무례해. 진짜!! 어, 흠, 일단! 그건 그렇고 차가 불그스름한 게 예뻐서 참네요.”

“뭐, 갑자기 잡아 챈 건 미안하지만. 일한 사람을 아무것도 안 해주고 그냥 보내는 건 아무래도 좀 아닌 거 같기도 해서.”

“와, 푸히힠, 나름 양반이셨네요."

혜미가 밝게 웃으며 영영의 팔을 툭툭 쳐대자 영영도 따라 웃다가 생각보다 아팠는지 살포시 팔을 감싸 쥐었다.

"향이 그윽하고 엄청 구수한데요. 이것도 괜찮네요.”

차를 음미하면서 향도 그윽히 맡아보던 그녀는 떡을 양손으로 잡고 반으로 찢고서 한쪽을 내밀었다.

“아저씨도 떡 드실래요? 내 손에 이제 떡 두 개 있는데.”

영영이 떡을 건네받고 먹자, 그녀도 떡을 곁들여서 차의 맛과 향을 깊게 들이키며 마무리를 지었다.

“차 잘 마셨어요. 떡도요. 이 차도 정말 괜찮고. 떡도 차랑 생각보다 잘 어울리서 맛있고요.”

혜미가 만족해하는 표정으로 빈 찻잔과 접시를 보이자, 영영이 겸연쩍은 듯 말했다.

“차는 진도 산이에요. 했던 말을 반복하는 것 같긴 해도 이윤이 어떻건 품질은 항상 현지의 좋은 것만 썼어요. 대량구매라 날 잡게 되면 가게 문 자주 닫히기는 하지만....... 있잖아요. 갑자기 뜬금없는 이야기라는건 아는데, 사실 처음에는 가게를 군데군데 뒤엎어 놓아서 걱정했는데 책임져서 수습도 다 하고 부족한 걸 지적하고 챙겨주는 모습을 보니 혜미 씨가 겉은 그래도 속은 참 다정다감한 것 같아요.”

영영의 말에 혜미는 이 아저씨가 무슨 실없는 소리를 하냐는 듯이 한번 피식하고 비웃었지만, 충분히 우린 구기자차와 같은 붉은색이 볼에 살포시 우러나오고 있었다.

“치, 말했잖아요. 아저씨가 너무 딱하고 불쌍해서 그런 거라고요. 정확히 말하면 이렇게 위태롭게 운영되는 아저씨의 가게가 더 불쌍한 거지만, 그리고 미리 말씀해두는데 제가 기분 상하면 제가 들인 비용 다 청구할 수도 있어요. 아직은 아니지만 주의해주세요. 참, 차 잘 마셨어요. 다음번에 또 뵙죠.”

그렇게 말을 끝내자마자 짧은 인사를 하고 바로 가버리는 혜미를 바라보던 영영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참, 어떻게 저런 손님이 다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일을 이 정도로 치밀하게 꾸밀 정도면 뭔가 비범한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당돌함의 극치를 달리는 그녀의 태도에 개인적으로 골치가 아파왔던지라 외적으로는 점점 방관과 달관적인 태도로 대응하는 것과 다르게 내적으로는 답답한 듯 머리를 긁으며 화가 섞인 혼잣말만 입 밖으로 내놓는 영영이었다.

“어휴, 여기가 내 가게인지, 쟤 가게인지.”

하지만 문단속을 꼼꼼히 하고 가게 구석에 박혀있던 노트북을 키면서 카운터에 적힌 이메일과 전화번호를 확인한 후, 차에 관한 자신의 서적과 자료들을 꺼내면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후, 그래도 약속한 건 지켜야지. 그치만 끝까지 귀찮은 건 사실인걸.”

그렇게 마치 내일 과제를 제출해야하는 학생처럼 밤새도록 백업한 워드 자료파일이나 도서관 논문자료, 가진 서적들을 뒤져가며 노트북에 타이핑하던 영영은 가시같이 따갑게 등을 찔러대는 피곤함의 기습에 졸다가 수없이 들이킨 녹차로 인한 과도한 수분섭취로 화장실에 자주 가는 걸로 겨우겨우 깨는 바람에 정말 피곤할 때 쓰는 자양강장제들을 마셔가며 어떻게든 버티면서 혜미의 메일로 정리한 정보들을 모두 보낸 후, 마침내 밀고 들어오는 피곤함의 습격에 굴복하고 심연 속으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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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찻집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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