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미는 인상을 쓰면서 영영에게 되물었다.

“그게 요약이에요? 이건 파면 팔수록 방대함이 끝도 없잖아.”

영영이 피식거리며 웃자 혜미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며 화제를 돌렸다.

"뭐, 장황한 설명 듣기는 그 정도로 해두자구요. 일단 이게 여기 카페 쿠폰이잖아요?"

혜미가 집어든 직사각형의 쿠폰을 보며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혜미는 뭔가 못마땅한 듯이 말했다.

"이 카페에 비해선 쿠폰이 너무 평범하지 않아요? 다른 카페나 음식점들도 도장이나 스티커 10번 모으면 음료나 음식 무료로 주는 것까지 똑같은데 말이죠."

"그건 또 무슨 소리에요?"

영영이 심드렁하게 말하자 혜미는 고민에 찬 표정으로 자신의 엎머리를 한손으로 만지작 거리면서 말했다.

"아니 그러니까, 왜 있잖아요. 이 가게만의 특별하고 개성 있는 걸 이 쿠폰에 드러나게 하면, 하찮고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쿠폰이라도 색다르고 꽤 신기하게 다가와 가게에 대한 호감을 이끌어 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거죠. 제 말은."

"대체로 어떤 걸 말해야 하는지 감은 안 잡히네요."

"그래요. 쉽게 이해할거란 생각은 안했어요."

"먼저 의견을 꺼낸 그 쪽은 어떤 걸 생각하세요?" 영영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피식거리는 그녀의 표정에 약이 올랐지만 참으며 대답했다.

그의 질문에 혜미는 당장은 뾰족한 대안이 없었는지 고심하다가 말을 꺼냈다.

"음, 일단 빨간 인주를 찍은 도장은 너무 평범하니까 패스하고, 스티커가 나을 것 같은데. 고전적이면서도 나름 의미를 담고 있고 현대 사람들에게 색다르고 특별하게 다가갈 수 있는 무언가에 적합한 소재면 더 좋을 것 같네요."

"그런 두루뭉술한 설명에 걸맞은 게 과연 있을는지."

"뭐 좋은 거 없을까요? 오히려 고전적인 건 아저씨가 전문이잖아요."

영영은 그녀의 요청에 고민하다가 역으로 물었다.

"대체적으로 구체적인 범주를 말해줘야 뭘 생각해보든지 하죠."

"뭔가 옛날에 주막이나 가게 같은데서 볼 수 있는 거면 좋을 것 같은데요. 그럼 전통적인 분위기가 물씬하지 않을까요?"

"그런 거라면 화폐밖에 생각이 안 나는데. 그 시절에도 계산은 하고 마셨을 거 아네요."

영영이 무심결에 대답을 하자, 혜미는 실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에이, 옛날 화폐인 엽전이나 지전은 중국, 일본도 썼었고 지금도 꽤 흔한 소재잖아요! 그래도 흔해터진 술병이나 항아리는 안나와서 그건 다행인데 좀 덜 알려지고 뭔가 신기해 보이면서 전통적이고 특출난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영영은 무리한 요구 조건에 '말은 쉽지.'라고 푸념하며 짜증이 조금 났지만 뭔가 걸리는 게 생각나 손을 튕기며 입을 열었다.

"아, 그런 소재가 하나 있긴 있다."

"뭔데요?"

혜미의 눈이 초롱초롱해지며 영영에게 질문하자 영영은 서고에서 책 하나를 꺼내 한 페이지를 보여주며 말했다.

"이게 은병(銀甁)이라는 고려시대 때 쓰였던 화폐에요."

"어머, 이런게 있었구나. 돈 치곤 엄청 신기하게 생겼네요. 꼭 호리병 같아요."

"네, 생긴 것도 항아리처럼 독특하게 생겼고 위의 입구가 넓어서 활구()라고도 불린 돈이에요. 엽전 같은 거죠.  숙종 6년인 1101년에 왕권강화 및 상권 활성화를 위해 법으로 지정된 법정화폐(法定貨幣)로 시행되어 은 1근으로 만든 고액화폐였고 이 신기한 모양은 그 당시 고려의 지도 모양을 본 따서 만든 거예요. 나중에 동이 많이 섞이거나 유통에 어려움을 겪고 사용한지 200년 쯤에 크기를 줄인 소은병이 쓰이다가 조선 초에 유통자체가 폐지되긴 하지만요. 참고로 법정화폐를 쓰자고 건의한 숙종의 동생이 대각국사 의천이에요."

"대각국사 의천이라면 예전에 차에 대에서 말씀하실때 설명해 주셨던.."

"네. 맞아요."

혜미는 사진속의 은병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손뼉을 연달아 치면서 말했다.

"이거닷! 아저씨, 대박! 완전대박!"

혜미가 기쁜 나머지 영영의 팔을 툭툭쳤고 영영이 당황해 쳐다보았다.

"뭐예요?"

"아주 정말 베리 진짜 잘했어요! 자, 하이파이브!"

그가 당황하건 말건 그와 하이파이브까지 하며 좋아하던 혜미는 영영이 펼친 페이지의 사진을 주시하며 자신이 가져와 두었던 짐에서 파스텔과 마카등 여러 펜들을 꺼낸 뒤, 스케치를 하고 파스텔로 하얀색과 하늘색 사이에 가까운 은은한 색으로 칠해서 사진에서 보이는 것보다 살짝 미화된 디자인을 끝마치고 영영에게 보이며 말했다.

"어때요?"

"와, 솜씨가 좋은데요. 예쁘게 잘 그려냈네요."

영영이 감탄하며 말하자 혜미가 그림을 영영에게 건네 주면서 말했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이고도 현대의 우리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이런 신선한 아이템이 있었다니. 아저씨네 쿠폰은 제가 그린 이 은병을 스티커로 제작하고, 도장은 더 이상 하지 않도록 해요. 아! 그리고, 스티커를 10장 모으면 차 하나를 무료로 주는 건 솔직히 다른 카페나 치킨집같은 음식점도 다하는 방식이라 식상하고 손님도 10개는 너무 멀게 느껴지니까 동기 부여가 안되잖아요. 사람을 행동하게 만들려면 강화와 충분한 보상이 필요하다고요 5개를 모으면 음료 하나가 공짜, 10개를 모으면 음료와 디저트 중 하나가 무료인 걸로 가죠. 아니면 3회, 6회, 9회같이 하시던가요. 그래야 뭔가 조금만 더 사먹으면 이득인거 같이 가까운 느낌도 들고 손해야 어떻든 손님이 보상이 아주 가까이에 보이니 강화를 받아 더 구매하게 되는 거죠.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학생들같은 소비층 쪽도 보상을 신경쓰고 구매하다보면 보상을 차례차례 받을때 어느정도 만족감을 줄 수 있을거고요. 어차피 차는 재료만 있으면 얼마든지 우려낼 수 있는 물장사고 떡이나 다과에서 재료비가 조금 들겠지만 그만큼 사람들이 신경쓰고 나머지 5번을 구매하는 것도 감안을 해야죠. 제 예상보다 폭이 크면 보상을 바꾸거나 텀을 늘리면 되니까요."

"에?"

종이를 받아든 영영이 그 말을 듣고 당황해하자, 그녀는 왜 그러냐는 듯이 말을 이었다.

"생각해봐요. 내가 손님이라도 보상이 단계별로 있으면 솔깃하겠네. 당장은 손해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는데 우리나라 특유의 '덤 문화'처럼 사람들은 자기 생각보다 '많은 보상'에 끌려오게 되있다니까요. 그런 쿠폰이야말로 손님을 가게에서 구매를 자연스럽게 하도록 유도하는 강화물로서의 역할을 하는거죠. 물론 얼마나 먹힐진 현실에서 해봐야 알겠지만. 일단 받으신 그건 아마 스티커로 제작해주는 업체가 있을 거예요. 거기에 의뢰하시고 이 스티커를 모으는 쿠폰에도 은병에 대한 설명과 함께 스티커를 붙이는 란이 나오도록 따로 제작해서 주문하세요. 그럼 손님은 세심한 사람이라면 전통적이면서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겠죠. 엽전이야 사극이나 여러 매체에서 나오지만 국사학자나 고려사를 아는 학생이 아닌 이상 은병을 어떻게 알겠어요. 단순한 고려청자 아님 유물이나 항아리로 보겠지. 역사공부도 하고 내가 고려시대의 사람처럼 값을 주고 차를 사 마셨다는 간접적인 경험도 주고 예술적, 역사적, 상업적 가치는 물론이고 얼마나 신선해요."

영영은 혜미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판단해 고개를 끄덕이며 수첩에 주문 예약계획을 잡고 혜미에게 받은 종이를 카운터 구석에 넣으면서 말을 꺼냈다.

"저번부터 느꼈던 건데, 표현력도 좋고 그림을 되게 잘 그리시는 것 같아요. 디자인 전공하셨어요?"

"히힛, 땡! 디자인학과는 아네요. 음.. 하지만 그림에는 제가 일가견이 있어서 칭찬 많이 받아요. 이래 봐도 놀이공원에서 초상화나 캐리커쳐 그려주는 아르바이트도 했었는걸요."

혜미의 말에서부터 전해지는 자부심과 의기양양한 태도를 본 영영은 웃으며 물었다.

"와, 그럼 진짜 실력파라는 건데, 미술을 시작하면서 전문적으로 공부해왔나 봐요?"

그 말을 들은 혜미가 난처한 표정을 짓는 걸 보고 본 영영이 의아해하자 혜미는 그저 실없이 웃으며 대답했다.

"에이, 그렇게 전문적으로 학원 다니거나 배워가며 한 건 아니고. 그냥 좋아하는 거예요. 원래 이런 거 돈 받고 하면 좀 비싼데 아저씨네는 제가 좋아하기도 하고 그냥 끌리니까 실력발휘를 해드리는 거죠."

"실력발휘 치곤 내공이 넘쳐 흐르는데."

영영이 주변의 혜미가 그린 그림들을 살펴보며 말하자 혜미가 이번에는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차피 손님들이 오는 '가게'잖아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처럼 그림은 볼 수 있는 시각매체에서 감정과 생각에 큰 영향력이 있는 소재니까 그것을 보고 감상한 것이 사람들의 시선과 기억에 크게 남을 테니 그게 가게 이미지가 되는 거고 곧 기억이 나서 다시 찾을 가능성도 크게 되죠. 가게 분위기도 살고요. 안습인 가게 하나 살리자고 저도 모르게 거창하게 꾸며놔서 아저씨네가 부담이긴 하겠지만. 애초에 그래야만 했으니까요. 인건비 청구도 안 하고 제가 잘하는 걸 최대한 발휘한 거니까 이해는 물론이고 감사해하세요. 손재주가 워낙 좋은 편이라."

혜미의 은근히 예전 가게를 까면서 자화자찬으로 이어지는 말을 듣고 영영이 '그래, 그래라.'는 듯이 살짝 짜증난 표정을 지으면서도 능청스럽게 입은 웃음을 유지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주자 혜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그런 아저씨에게 미안하지만 만만치 않은 부담 하나 더 드려도 될까요.”

주변을 청소하려던 영영은 그녀의 말을 듣고 뜬금없다는 듯이 물었다.

“무슨 의미에요? 언제는 안 그랬던 것처럼.”

혜미는 그 말을 듣고 살짝 짜증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내일 짧은 시간 동안만 장사 안 하시면 안 되나요? 이제 본격적으로 마무리 작업만 하면 기틀은 다 완성되거든요. 근데 이게 소음이 좀 커서.”

이 학생이 이젠 뭘 하려고 그러나 싶었던 그는 솔직히 말려도 할 것 같은 혜미의 기세에 밀려서 체념한 듯, 태연히 대답했다.

“네, 그러세요.”

영영의 승낙을 들은 혜미는 조금 놀라는 눈치를 보이다가 다 마신 컵을 두고 주변을 정리한 뒤, 문밖을 나섰다.

“잠깐, 저기.”

“죄송해요. 빨리 가봐야 해서요. 내일 봐요.” 혜미는 영영에게 급사과하며 뛰어나갔다.

닭 쫓던 개 신세 같아진 영영이 멀어지는 헤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좀 더 빨리 말을 걸 걸 하는 생각에 자책하면서 카운터 의자에 앉아 음식점 번호들이 묶인 주문 전단과 전화기를 번갈아 살펴보았다.

그리곤 다시 노 교수가 남긴 쪽지를 펼쳐보며 그 의미에 대해 자신이 만족할만한 답을 내리기 위해 가게 문을 잠그고 깊은 고심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무언가 두드리는 소리가 귀에 들어가면서 잠에서 깬 영영이 눈을 비비며 소리가 나는 현관을 바라보자 비가 거친 바람에 실려 내리는 바깥에 비옷을 입은 혜미가 열심히 잠긴 유리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일찍 오셨네요?” 그가 문을 열고 말을 건넸다.

“네, 어제 말 한대로 소음 좀 나는 작업을 해야 해서요.”

혜미는 우의를 벗어 한쪽에 던져놓고 메고 있던 도면통과 가방, 두꺼운 비닐로 덮여진 반달곰 캐릭터 모양의 여행용 트렁크가방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추울 텐데 차 좀 드릴게요.”

영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혜미가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에 전화하는 사이, 영영은 전기 포트에 물을 끓이면서 말했다.

“그 가방은 뭐예요?”

“아, 작업할 때 참고할 책들이랑 오늘 쓸 도구들이에요. 비가 와서 낭패이긴 한데 확실히 마무리 지으려고 해요. 도와주실 수 있죠?”

“네.” 영영이 가열이 끝난 포트의 전원을 끄며 말했다.

“혹시 비옷 있으세요?”

“창고에 하나 있긴 할 건데요. 왜 그러시죠?”

혜미는 차를 담은 통 중에 하나를 고르려는 영영에게 말했다.

“뭐가 하나 올 거거든요. 바람도 많이 불고 우산으론 한 손을 못 쓰니 불편할 수 있어서요.”

이 학생이 대체 무슨 소릴 하나 하는 생각에 피식 웃은 영영이 뭔가 잊고 있었다는 듯 손으로 볼을 가볍게 치면서 창고에 있던 선풍기 형태의 히터를 꺼내 혜미의 옆에 두고서 작동시킨 후, 세면대에 있던 수건도 닦으라고 건네주었다.

“고마워요. 저기 죄송하지만 신발이랑 양말이 다 젖어서요. 여긴 실내화 없나요?”

“실내화는 없는데, 슬리퍼라도 드릴까요?”

“네.”

혜미는 받은 수건으로 얼굴과 머리카락, 손과 옷등에 묻은 물기를 닦다가 신발과 양말까지 다 벗어서 안 쓰는 의자 하나를 히터 옆으로 끌고 온 뒤, 신발은 신발줄을 다 빼서 물이 빠지도록 의자 등받이에 기대서 놓아두었다.

그는 그녀가 벗은 양말을 보고 비닐봉지 하나를 뜯어서 그 안에 수건과 같이 넣게 하고 화장실로 가서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드럼세탁기를 열고 세제와 함께 비닐봉지를 털어 넣었다.

뚜껑을 닫고 물높이 저, 소량빨래로 모드를 맞추고 동작버튼을 눌러 물이 받아지면서 작은 플라스틱 용기 안에 든 액체세제가 풀어지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오자,  그녀는 그 사이 의자 하나를 더 끌고와 앉은 뒤, 히터의 온기를 쬐며 영영을 바라보았다.





"양말은 수건이랑 같이 화장실에 있는 세탁기 돌렸으니까 한 삼 사십분 있다가 내가 까먹으면 그쪽이 가져가서 말려요."

"감사합니다."

"이런 궂은 날에 대체 오늘은 뭘 하려고 그러는지..."

“오늘은 준비한 것도 많고 좀 신경 좀 써야 해서 피곤하면 안 되거든요. 좀 각성돼 있어야 해서요. 공부할 때는 항상 믹스 커피나 자판기의 밀크커피를 마셨었는데.”

“아, 그래요?”

“네, 뭔가를 하려면 카페인이 항상 필요하잖아요. 그나마 실수 안 하고 안 피곤하려면요. 주로 마시는 녹차나 커피나 카페인이 많으니까 그렇죠.”

“엄밀히 말하면 우려내는 깊이가 다른 더치커피가 아닌 이상 우려내는 녹차가 그냥 커피보다는 카페인 함량은 조금 부족하죠.”

그 말에 헤미는 곤란한 표정으로 턱을 괴며 하소연하듯 말했다.

“오늘 좀 많이 힘들기도 하고 힘들어질 것 같아서 그런데 그렇다고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면 뒷감당이 안되서요. 그런거나 막 자양강장제 같은거 마시면 딱 그런 기분 있잖아요. 이거 마셨으니 안 잘거 같은 기분. 푸흐흐.”

자신이 말해놓고 실없이 웃는 그녀를 쳐다보던 영영이 계속 아무 표정 변화 없이 계속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피곤함도 좀 풀고 몸도 따뜻해지게 커피 타드릴까요?”

혜미는 미안하다는 듯 어색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고 영영은 한숨을 길게 쉰 뒤 싱크대 아래 칸을 열어 예전에 쓰던 커피 도구들을 꺼냈다.

“전 밀크커피로 해주세요.”

“그건 진짜 자판기에서나 나올 메뉴고 일단 우유를 넣은 커피는 카푸치노랑 카페오레, 카페라테가 있는데 어떤 걸로 해드릴까요?”

“치, 자판기 아저씨가 자판기를 무시하시네. 지금 자아비판 하시는 거죠?"

혜미는 그가 곤욕스러운 표정으로 째려보자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푸힛, 알았어요. 알았어. 이름이 부르기 예쁜 카푸치노로 해주세요.”

그 순간, 저번처럼 트럭의 둔탁한 정차음이 현관문 앞에서 들리자 혜미는 허겁지겁 비옷을 입고서 영영에게 따라오라며 손짓을 했고, 무심코 우산을 꺼내 따라나섰던 영영은 세찬 비바람에 우산의 기둥이 꺾이는 것을 보고 놀라 할 수 없이 꺾인 우산을 두고서 비닐 비옷을 챙겨 입고 나와 트럭 짐칸에서 덮인 방수포를 걷어내 비닐에 싸여 있는 무언가를 꺼내 옮기는 등, 혜미를 도우며 가게 안으로 그것들을 옮기기 시작했다.

물건을 다 옮긴 혜미가 운전석으로 가서 창틈으로 이야기를 반가운 표정으로 주고받은 후, 웃으며 배웅하자 멀리서 지켜보던 영영은 빗물 뭍은 비닐포장을 벗겨내며 그것이 원목 판재나 각목들임을 보고 의아해했다.

트럭이 떠나고 미소를 지으며 안으로 들어와 비옷을 벗는 혜미에게 영영이 고라니 모양이 선명한 상표 비닐에 담긴 판재 하나를 들면서 말했다.

“이건 어디서 구한 거죠? 또 그 때 왔었던 거기인가요?”

혜미는 의자에 앉아 수건으로 손을 닦고 이빨이 묘사된 입 긴 돼지가 귀엽게 그려진 슬리퍼를 벗어 발도 닦은 후, 얌전히 내려놓고 바닥에 나둔 가슴에 반달이 있는 커다란 곰으로 장식된 자신의 트렁크 가방의 속을 뒤지면서 대답했다.

“네, 산 쪽에 공사현장에서 쓰다 남으신 거 저렴하게 팔아달라고 이야기해서 구했어요. 근데 학생이 무슨 돈이 있냐면서 이런 거 살바엔 책이나 사고 공부나 하라며 혼났지 뭐예요.”

“대학생이 공부를 안 하잖아요.”

혜미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그는 눈을 지그시 감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참, 실력을 기르는 중 인데요. 그건 그렇고 너무 헐값에 받아서 아저씨에게 새삼 부탁한 것 자체가 미안해지네.”

두 손을 올리며 헛웃음을 짓던 혜미는 나무자재들을 살펴보던 중에 기겁한 표정으로 외쳤다.

“어? 어라? 이건 쓰고 남은 게 아니라 좋은 가격에 팔아도 되는 상품이잖아! 어쩌지, 어쩜좋지. 이 아저씨가 진짜!!”

영영은 혜미가 다급하게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으나 ‘한심하게 써야하는 남은 자재로 장난치지 말고 돈 주고 이왕 쓰는 거면 좋은 걸 써.’ 라는 말과 함께 상대방 전화가 끊어져서 연락도 안 되자, 난처한 표정으로 ‘이 가격에 이런 걸 받으면 안 될 텐데.’하며 골치 아파하다가 에라 모르겠다는 듯이 하던 일로 돌아오는 그녀를 옆에서 생생히 지켜보았다.

“자, 어쨌거나 그럼 시작해볼까? 잠깐 소음 좀 낼게요.”

가방 속에서 안전모와 보안경을 꺼내 쓴 혜미는 핸드 그라인더도 꺼내 자신이 가져온 멀티 탭의 코드를 연결하고 꽂아 전원이 들어오게 한 뒤, 사포 날이나 절단용 칼날 같은 부품들도 가방에서 꺼내 그중 하나를 결합하고 환기를 위해 방문을 다 열어서 그라인더의 스위치를 눌러 맹렬히 적막을 가르는 회전 칼날 소리가 가게 안에 울려 퍼지게 만들었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믿기 힘든 광경에 경악한 영영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자, 잠깐. 그거 뭔지는 알고 다루는 건가요?”

혜미는 처음 보냐는 듯이 핸드 그라인더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라인더잖아요? 처음 보세요? 이게 우리나라 말로 뭐였더라, 연마기였던가?”

“아니, 아니 지금 그게 아니라 무슨 숙녀분이.”

답답한 듯이 한 손은 뒷목을 잡고 다른 손은 자기 가슴을 두들긴 그는 그녀의 미칠 듯한 비범함에 함부로 대하면 안 되겠다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아, 걱정 돼서 그러시는구나. 괜찮아요. 저 목수일 좀 배워서 능숙하거든요. 규방같이 한옥의 방 분위기를 내려면 그림만으로는 어림없더라고요. 그래서 오늘 원목들로 그럴듯하게 꾸며 놓고 필요한 물품만 사면 인테리어 작업은 마무리될 것 같아요.”

고속으로 돌아가던 칼날이 멈춘 그라인더를 들어 보인 혜미가 환하게 웃자 왠지 모를 공포감이 들어 조심히 그녀의 뒤에서 그녀가 하는 작업을 지켜보았다.

핸드 그라인더로 길이만큼 나무를 자르고 사포 날로 연마하여 모양과 결을 내고 벽에 실리콘과 글루건으로 붙이거나 최대한 눈에 대놓고 안 보이는 방향으로 피스를 박는 등 작업을 숙련되게 하는 혜미의 옆에서 영영은 섬유유연제를 넣어 행구고 탈수까지 끝난 양말을 꺼내 히터옆의 의자 등받이에 온기를 잘 받게 걸어둔 다음, 생성되는 톱밥을 빗자루와 쓰레받기로 담아 치우고 필요 없는 자재들을 치우는 청소작업을 도왔다.

몇 시간이 지나자 그 다음 방까지 그녀의 손길이 닿으면서 옛날의 목재를 사용한 한옥의 방과 같은 모양새가 나오는 것에 그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러다가 자신이 까먹고 있었던 혜미의 커피 부탁이 떠올라 ‘아차!’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나무라며 부엌으로 가서 구석구석을 살펴보던 영영은 일주일 남짓에 같이 일했었던 선배가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며 선물로 받았던 로스팅된 케냐 AA 커피 한 봉지를 발견하고 그제야 기억나는지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로스팅 표시 날짜를 살펴본 다음 가위로 봉지를 개봉해 원두를 수동 커피 그라인더인 핸드밀에 넣고 열심히 갈았다.

뜨거운 물을 부으면서 드리퍼로 추출까지 마친 영영은 유통기한을 확인한 우유를 거품기를 사용해 스팀을 주면서 거품을 만들고 사기로 된 잔에 커피와 우유, 거품을 잘 따라내어 완성한 후에 말했다.

“아까 말씀하신 카푸치노에 시나몬 가루 뿌려 드려요?”

“아뇨. 괜찮아요.”

잔을 들고 혜미가 있는 방 안에 들어가 조심스럽게 들어서자, 옷을 포함해 다리와 발, 신은 슬리퍼에까지 가득한 톱밥을 다 털어내고서 그라인더 작업을 마치자마자 날을 해체한 뒤, 다 써서 모아놓은 망가진 날들 사이로 던져놓던 혜미는 반가운 표정으로 안전모와 보안경을 벗고 그가 다가와 건네준 잔을 받아들고는 벽에 기대고 앉아 커피와 그 위의 우유 거품을 음미했다.

"음, 나무톱밥 냄새만 계속 맡다가 커피향 맡으니까 진짜 따스하고 향기좋네요."

"이게 느끼시는 대로 향이 풍부한 원두와 부드러운 우유를 썼으니까요."

영영도 옆으로 다가가 벽에 기대어 앉은 뒤 말을 꺼냈다.

“실은 아까 커피 시킨 걸 잊어먹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면 일을 완전히 끝내기 전까진 까먹고 있었는게 좋았을지도요.”

“에? 그게 무슨 소리예요?”

“땀을 많이 흘린 후에 커피는 별로 안 좋다고 들었거든요. 그래서 이걸 말로 해줘야하나 고민 좀 했어요.”

혜미가 괜찮다는 듯 커피 잔을 바라보며 말했다.

“괜찮아요. 원래 이런 일 할 때도 간식으로 캔커피 돌리거든요. 그리고 항상 몸에 좋은 일만 할 수도 없잖아요.”

영영은 석연치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물론 외람된 건 알지만 공장 가공된 캔커피랑 제가 만든 커피랑 비교하면 섭섭하죠. 엄연히 정식적으로 들여온 깊고 그윽한 향의 케냐 AA 원두를 핸드드립으로 낸 에스프레소를 토대로 우유와 거품을 잘 사용해 만들어낸 전문가의 노하우와 정성까지 들어간 카푸치노인걸요!”

영영의 자부심을 바로 옆에서 진하게 느낀 혜미가 한 번 마셔보라는 듯이 잔을 건네자 영영이 거절하면서 다른 잔에 끊인 물을 담아 ‘남양주’산이라고 적힌 말린 보라색 도라지꽃 차 티백을 빠트려 묶인 줄을 들었다 놨다 우려내면서 다시 혜미의 옆에 앉았다.

“아무리봐도 여대생치고는 솜씨가, 아니 기술이 보통이 아니네요.”

“말했잖아요. 온갖 일을 해봐서 이쪽 일도 좀 했었다고요. 다른 일들도 많지만 이런 쪽 일이 아무래도 일당이 세니까요.”

"아니, 여자들이 할 수 있는 일중에 다른 수당 좋은 일들도 많은데, 굳이...."

"뭐라고 해야하나. 일 자체가 좀 힘쎄고 강해 보이잖아요. 단순해 보이겠지만 이래봐도 다칠 위험도 있고 기술이나 노하우도 필요해서 전문적인 일이에요. 열심히 땀흘린 만큼 일당도 어떻게든 받아내고 간식이나 점심식사도 알아서 잘 챙겨주고요. 치료비는 안 주지만."

“여대생이 그라인더를 잡는 건 공포영화가 아닌 이상 꿈에도 생각지 못할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었어요. 근데 아까 작업할 때 자기 할 것은 어떤 방법이든 하려는 모습과 눈빛이 참, 그림 그릴 때는 여대생다운 해맑은 표정이었는데 다른 일을 할 때는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그와 반대로 악착같고 필사적인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 말이 끝나자마자 자신을 날카롭게 노려보는 혜미의 눈과 마주친 영영은 말을 더 잇지 않고 차를 들이켰다.

“지금 같은 양성평등의 시대에 뭘 더 못 보여드리겠어요? 그나저나 생각보다 해주신 커피가 커피보단 우유 거품이 더 많네요.”

“네, 카푸치노 시키셨잖아요.” 영영이 당연한 소릴 하냐는 듯이 말했다.

“어? 원래 이런 건가요?”

혜미가 의아해 하며 묻자 영영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친절하게 답해 주었다.

“아, 커피를 잘 모르시네요. 우유를 첨가한 커피 중에서 카푸치노는 에스프레소가 3.5 남짓, 우유가 2에서 3, 우유거품이 3에서 4 비율로 많이 함유된 것이고 카페라테는 그보다 우유거품의 비율이 낮고 우유가 더 들어간 것, 카페오레는 에스프레소와 우유를 동등비율로 섞은 걸 말해요. 오랜만에 핸드 드립한 건데 어때요? 원래 수프리모도 좋은 커피고 과테말라 안티구아나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원두도 다루었는데요. 커피를 다루다 보면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커피 원두 그대로의 에스프레소에서 각 원산지의 원두마다 맛의 차이가 나는 게 정말 매력적이죠. 또 이게 한번 가는 것도 맛이 달라지는데 잘 모르시는 분들은 그냥 첫 맛이 쓴데, 여전히 쓰고 다 똑같다 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끝 맛이 달거나 초콜릿 향을 비롯한 특유의 맛이 분명히 있어요. 원두 종류에 따라서도 맛과 향이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이 커피죠. 이게 부드러운 우유를 첨가한 카푸치노긴 해도 고급으로 치는 케냐 AA커피 고유의 담백하고 부드러운 맛을 살리려면 일반 에스프레소 머신을 쓰기보단 특유의 방법으로 핸드밀! 그러니까 수동 커피 분쇄기을 이용해 직접 손으로 가는 것이 좋은데 제가 바리스타 시절에 그걸 처음 배워서 제대로 성공했었을 때의 짜릿함이란 말로 형용할 수가 없었죠. 흐흐. 또 바리에이션 커피들도 카페모카 같은 것들은 막 저것과 같은 가스 충전식 생크림 휘핑기등을 이용한 생크림을 위에 올리는 옵션을 포함해 물과 우유에 비율에 따라……”

혜미는 신나게 떠드는 영영을 유심히 쳐다보면서 차를 들이키며 말했다.

“그렇게 환하게 웃으시는 거 처음 봐요.”

영영이 말을 멈추고 놀라서 혜미를 쳐다보자, 혜미는 뜨거워서 그런지 잔에다 깊은 날숨을 쉬면서 계속 말했다.

“역시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나 봐요. 자판기 아저씨.”

순간 정적이 흐르고 영영과 혜미가 서로를 쳐다보며 어색하고도 무거운 분위기가 두 사람을 짓누르자, 그것을 타계하려는 듯이 붉어진 얼굴을 한 그가 말했다.

“그 자판기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시죠! 바리스타였다니까!”

그러자 혜미도 빨리 분위기를 바꾸자는데 동참한다는 듯이 받아주며 말했다.

“뭐 어때요? 둘 다 커피만 뽑으면 다 자판기지.”

“아니 인간의 존엄성을 다 건너뛰셨나. 왜 기계랑 비교를 자꾸!!”

혜미는 놀리면서도 자신이 나무와 그림으로 그럴듯하게 만든 창호 문을 보면서 말했다.

“이게 벽만 안 이어져 있어도 전동 드릴 큰 거나 오함마로 부셔서 샷시달고 공구리쳐서 창을 만드는 건데 아쉽네요. 꽉 막힌 느낌이 들지 않도록 가짜 창문 모양을 내긴 했는데, 이거 자연스럽게 하는 것도 어려워요. 밀폐된 방이지만 습기가 많이 차지 않아서 다행이네요.”

영영이 그새 차를 다 마시고서 주변에 널브러진 책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작업은 끝난 거 아닌가요?”

“아닌데요. 이제 미술 작업만 하면 완성인데요. 그것만 끝나면 시마이하는 거죠. 완전종결. 참, 여기 조명을 좀 더 엔틱하게 은은한 걸로 바꾸시고요, 와이파이 잘 안 잡히던데 공유기 좀 좋은 걸로 사놓으시고 아이나 아기를 동반한 부모 분들이 고객층이 될 수 있으니 아기용 등받이 의자도 구비해 놓으세요.”

빈 잔을 혜미에게서 요청과 같이 받아들인 영영은 자기 것도 들어 방에서 나와 설거지를 시작했고 혜미는 색칠 도구들을 들어 책에 나온 규방 문화의 자수를 최대한 비슷한 색깔로 봉황이나 학, 십장생, 꽃들을 그려내 어수선하지 않고도 화려하게 제법 그럴듯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반대편 사랑채 방에는 책에 나온 족자그림을 비슷하게 그려내는 등, 벽이나 탁자를 장식하는 단아하고도 옛 시절의 문화가 물씬 풍기는 방으로 탈바꿈시키며 그래도 부족한 부분은 규방에 관련하여 영영에게 자수를 놓은 수저 집과 실내화로 쓸 만한 꽃신, 최대한 중고로 나온 나전칠기나 사랑채 쪽에 놔둘 옛 방석이나 도자기, 가구들을 최대한 조선 시대 때 쓸만한 오래된 것으로 주문 구매할 것, 그리고 찻잔이나 컵 홀더에 차에 대한 디자인이나 수려하고 예쁜 글씨체로 차에 대한 고전 다시(茶時)나 글귀들을 새겨 특별하게 할 것을 지시했다.

밤이 다 되어가자 영영은 혜미가 말한 것들을 다 인터넷이나 전화로 예약 구매한 후에 금액을 계산하고 근처 슈퍼마켓에서 재료를 사서 도마에 쪽파와 당근을 직접 썰어 넣고 계란까지 넣은 다음 온갖 채소 잎들로 장식한 국수를 끓여 내 혜미에게 저녁 대접을 했다.

혜미가 고개 숙여 인사하는 것으로 감사함을 표시한 후, 젓가락을 들어 국수를 먹자 영영이 최종적으로 작업이 끝난 방을 살펴보며 현실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그의 예상을 무참히 부셔낸 자연스러운 모습을 감상하면서 그녀의 빼어난 실력에 혼자 감탄했다.

“흐읍, 맛있다.”

어깨와 손가락이 결리는지 마치 스톱 모션을 보는 것 같은 더딘 몸짓과 김을 내뿜는 뜨거운 국수를 먹느라 얼굴에 물이 흥건한 혜미가 감탄하며 말하자 영영도 같이 자리에 앉아 국수를 먹었다.

“이제 멍하니 카운터에 앉아있지 말고 제가 요청하거나 부탁하는 거 다 준비하면서 착실하게 사놓는 거예요.”

국수를 다 먹은 혜미가 영영에게 말하자 영영은 말 대신 주문한 내용을 스마트 폰으로 보여주었다.

“다 사 놓으셨네요! 대단하세요. 정말 잘 따라와 주고 계시네요.”

자신이 먹은 그릇을 싱크대에 놓은 혜미가 아직 덜마른 신발과 양말을 영영이 준 비닐봉투에 담은 다음 가방과 옆에 걸친 도면통, 캐리어에 다 넣어 짐을 정리하면서 비 맞지 않게 비옷까지 덮고 영영에게 빌린 슬리퍼를 신고 현관으로 가자, 영영은 배웅하러 그 뒤를 따랐다.

“내일 모레쯤이면 주문한 상품들도 오고 진짜 본격적으로 준비는 끝나가고 시작이 오네요, 늦었지만 조금 더 기다려주세요. 지금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이 무림일검 일호점을 누구나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알아주고 사랑해주게 될 테니까요.”

“응? 일호점이라고요?”

“네, 설마 여기 하나에서 안주하는 건 아니죠? 여기서 잘 안되더라도 크게 심하진 않은 손해이거나 현상유지이고 잘되면 수익창출에다가 좀 더 보태서 점포를 하나 더 만들어 영영 씨가 말하는 전통 차 문화 계승을 전파하는 거죠. 지금은 불확실한 꿈같은 이야기지만 모든 건 넓게 구상해 봐야 하지 않겠어요.”

“지금 우리 집이 일호 점이라.”

영영이 되뇌자 혜미는 웃으며 인사하고 돌아갔고 영영은 그녀와 너무 얽혀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얼마 안 남은 하루를 보냈다.

이튿날, 주문한 상품들이 한꺼번에 도착해 배치를 힘겹게 끝낸 영영은 방문하는 손님들의 표정이나 시선들이 달라진 것을 실감하면서 주문을 받았고 방을 쓸 사람들은 3시간 정도만 이용하도록 제한을 두고 사용하게끔 하면서 조심조심 반응들을 살폈다.

그 틈에 허겁지겁 도착한 혜미가 슬리퍼가 든 종이봉투를 건네주고 자신을 신경써서 보는 영영의 시선을 주목시키며 말했다.

“이거 잘 썼어요. 그때 감사드리고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어? 네, 물론이죠.” 그가 종이봉투를 받아 카운터 한 구석에 두는 사이, 혜미는 방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손님들을 곁눈질로 살펴보며 말했다.

“거봐요. 벌써 반응이 오죠? 내가 보통 솜씨가 아니니까요. 히힛.뭐 그날 어깨랑 팔목 빠지는 줄 알았지만. 감기 안걸린것만으로 어디에요.”

영영이 미안한 마음이 들어 혜미를 똑바로 바라보지 않자 혜미는 괜찮다는 듯 영영의 옆구리를 치며 말했다.

“괜찮아요. 걱정 안하셔도 되요. 세탁도 해주셨고 커피도 주셨으니까 일당 달라는 소리는 안 할 테니.”

“아니, 그것 때문이 아니라.. 에휴, 말을 말아야지. 오늘은 또 어떤 일로 온 건가요?”

“아, 이거요.”

혜미는 가방에서 화선지에 먹물로 행다법[각주:1]의 내용을 적어낸 것을 보여주었다.

"어때요."

"멋진데요." 그가 글자 하나하나를 살펴보며 말했다.

"그죠? 진짜 멋들어지죠? 제가 보는 눈이 있거든요!"

“도서관에서 관련 내용을 찾아서 모은 다음에 제가 이것저것 같이 하면서 놀고다녔던 고등학교 동창중에 디자인과로 갔었던 친구가 있는데 걔가 글씨하나는 진짜 잘 썼거든요! 그래서 재료는 준비해 줄테니 써줄 수 있는지 부탁했더니 뭐 어려운 일이냐며 쉽게 해주더라고요. 저도 정말 고마워서 그날 뷔페에 데려가 밥도 사줬죠. 그렇게 얻어온 이게 걔가 하나하나 먹물로 직접 그린거예요."

"와아, 대단하네요."  혜미가 두 손으로 잡고 들어보이며 그에게 보이자 그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친구관계를 떠나 원래 이렇게 잘하는 부분에 대해선 잘 대접해주고 인정해주면 서로 좋은거죠. 이렇게나마 분위기도 살리고 방이나 주변에 붙여서 다도에 대해 알 수 있게끔 하는 거죠.”

“친구분 성의를 저희 가게에 쏟을 정도라니 정말 고마움을 못다 할 정도로 우리 가게에 열성적이시네요.”

“네, 그럼요. 이 곳 일호점을 위해서와 더불어 하나하나 바뀌어가는데 보람과 성취를 느끼고 있거든요. 내가 꽂힌 일에 어떤 정성이든 못들이겠어요? 그리고 실은 입소문을 위해서 저녁에 후배 몇 명 데리고 방문할 거니까 책도 좀 읽고 방도 규방 쪽은 웬만하면 손님들 오래 받지 마시고 여러 가지로 준비를 좀 해주세요.”
영영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물었다.

"저기 그쪽 학업이나 주어진 일은 다 하면서 도와주는 거죠?"

"당연하죠. 할일 다 하면서 하고 있어요." 그녀는 가볍게 웃으며 대답하고 손을 흔드는 인사와 함께 가게를 나섰다.

그는 혜미가 나간 것을 지켜본 뒤, 손님이 나간 방들에 청소기로 한번 밀고 걸레로 닦은 뒤, 주변 구석을 청소하며 눈에 보이는 쓰레기는 다 치우고 현관문 주변에 널린 전단이나 그새 누군가 버린 꽁초와 쓰레기들도 모두 치우고 손님을 대접하다 틈이 나자 설거지를 마치고 책을 읽었다.

  1. 行茶法: 차를 달이고 우려내는 법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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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찻집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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