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한 달이 지나자, 가게를 찾는 주요 고객층은 기사, SNS,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학생들을 비롯해 직장인, 기존 단골 노년층등 찾아오는 손님들의 빈도도 늘고 연령대가 무척 다양해졌으며 방문하는 교수님들에게 목에 좋은 차들을 소개해준 것이 주효했는지 학과 모임이나 손님 중 교수님들도 늘어나면서 무림일검은 그 전의 적막했던 분위기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모습이 되어 있었다.

개조했던 두 방은 반응이 매우 좋았고 특히 규방이 제일 인기가 있어서 최소 시간을 3시간에서 2시간으로 줄이고 예약까지 받을 정도로 사람들이 붐볐으나 한편으로는 주변 카페의 할인행사를 포함한 견제와 더불어 늘어나는 가게수, 커피에 익숙한 고정고객층의 부동은 여전히 수익의 변수 중 하나였다.

다례[각주:1] 배우고 싶다는 낮은 나이의 아주머니들이나 높은 나이의 어르신들 요청으로 다례 레슨이나 다기 중계판매를 준비하고 있던 영영은 늘 그렇듯 가게를 열기 전, 노트북을 켜고 키보드를 두들기면서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받은 고서를 뷰어를 통해 열람해 하나하나 훑어보며 다과등 레시피에 쓸만한 내용을 찾고 있었다.

그러다 휴대폰이 울리자, 전화를 받은 영영이 차분하게 대답했다.

“여보세요. 네, 주인아저씨.”

전화를 건 건물 주인이 영영의 목소리를 확인하자 특유의 실없고도 안타까운 목소리로 영영에게 말을 걸었다.

“어, 다짜고짜 이렇게 전화로 통보하게 되서 미안하게 되었지만, 가게세를 8% 올려야 할 것 같네.”

영영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덤덤하게 말했다.

“네. 그러세요.”

“자네 가게가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상가 임대차 보호대상에 해당해서 연 9%를 초과하여 인상할 수 없더군. 요즘 경기가 어렵기도 하고. 경쟁도 치열하고 불경기니까 좀 이해해 주게.”

“예, 그러죠.”

영영이 전화를 끊으려 하자, 그걸 눈치챈 주인아저씨가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자, 잠깐. 끊지 말고. 자네 정말 프랜차이즈로 들어갈 생각 없어? 그쪽이 워낙 좋은 조건을 제시하니까, 하고 싶게 되면 내가 충분히 배려해서 가게세를 하ㄹ……”

그는 더 들어줄 필요 없다는 듯, 휴대폰을 끄고 세무서에 신고할 것을 포함해 여러 고지서들을 쳐다보았다가 앞으론 전기장판을 써야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두 방의 난방비가 좀 나왔다는 것과 재료비, 전기세, 수도세 주유비, 자동차세등 이것저것 내야 할 것들이 몰아닥쳐 펜을 꺼내 메모지를 가지고 합계를 내보기 시작했다.

합쳐서 계산해보면 이번 분기는 수익에 비해 빠져나가는 돈이 워낙 많은 바람에 손님이 이대로 늘어나지 않는 한 수익재료 살 돈도 빠듯하게 된지라 이미 바리스타때 모아놓았던 돈은 바닥을 드러낸지 오래니 현찰이 부족한 상황이므로 재료라도 미리 사두게 은행 대출이라도 받아 놔야하나 하며 한탄한 영영이 머리가 복잡해지고 마음이 뒤숭숭해져서 메모지를 치우고 그냥 찾던 자료를 비추고 있는 노트북 화면에 집중했다.

하지만 얼마 못 가 잠긴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자, 왠지모를 익숙함에 혜미임을 추측하고 문을 열어주었다.

“무슨 일이에요?”

몹시 들떠있는 혜미를 보며 영영이 물어보자, 혜미가 웃으며 한 인형을 꺼내 보여주었다.

“헤, 귀엽죠? 아무래도 아이들 손님을 생각하면 인형들도 있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요.”





귀여운 늑대 봉제인형을 본 영영이 턱을 괴며 '그런가?' 하는 생각으로 혜미를 쳐다보았다.

“근데 왜 늑대죠?”

“늑대라고 하니까 대게 취급을 안좋게 하다보니 오해받는 것이지 얜 달라요. 사람도 성격마다 다른 것 처럼요! 잘 봐요. 귀엽잖아요. 아, 이거 말고도 다른 종류로 몇 개 더 있어요. 철없는 꼬마 손님들이 이 가게에서 보낼 인생의 짧은 시간을 얘가 가지고 놀 장난감으로서 즐겁게 해주고 보살펴 줬으면 하네요.”

영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혜미가 실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한 식구인데 인사 좀 제대로 해 봐요.”

어처구니없어진 영영이 웃으면서 늑대 인형을 건네받아 품에 안자, 혜미는 기다렸다는 듯이 한 두꺼운 잡지를 보여주면서 말했다.

“실은 이거보다 더 좋은 소식 때문에 기분이 좋았거든요. 여기 나왔어요! 이 가게랑 아저씨 칼럼이요.”

영영은 놀란 눈으로 잡지를 받아들고 비닐 포장을 뜯어 목차에서 페이지를 찾은 다음 그쪽을 펼쳐보며 말했다.

“야, 잘 나왔네.”

영영이 감탄하면서 기사를 읽자, 그녀가 영영을 붙잡으며 말했다.

“같이 좀 봐요! 나 이거 알려준다음 같이 읽으려고 포장도 안 뜯고 서점에서 사서 바로 왔단 말이에요!”

그는 기사 내용 중 ‘저희 가게의 목적은 돈보다 고객님의 건강, 한방차 대중화 그리고 전통 차 문화의 재해석 및 보급에 의의가 있습니다.’ 라고 크게 쓰여 있는 부분에서 편집부의 자체 편집이 있을 수도 있다는 기자의 말이 생각나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자세하게 나왔네요. 건강특집 핫 클립 칸에 실려서 그런가.”

혜미는 기쁜 나머지 들뜨면서 말했다.

“하나는 되었어요. 이제 관심 있는 쪽에서 아저씨네 가게에 오퍼 하겠죠.”

“정말 이게 그렇게 영향력이 있다는 거죠?”

“그럼요!”

당연한 걸 물어보느냐는 듯 말을 들은 그는 잡지를 한 손으로 잡고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뭐가요?”

“최근 2주간 이상한 전화들을 받았는데. 신문사도 있고 다른 잡지사 같은 데서 인터뷰 및 취재요청이 있었어요. 아마도 그 기자님이 저희 가겔 퍼트렸나 보죠.”

“뭐라고요!”

혜미는 매우 놀라며 말했다.

“왜 나한테는 말 안 해줬어요! 내가 자리 다 마련해 줬는데!”

영영은 늘 그런 식이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물어봤어요?”

혜미는 크게 당황했다.

“아뇨.”

“이제 이해되세요. 제 입장?”

퉁명스럽게 말한 영영은 혜미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잡지를 책장 제일 위쪽에 꽂으며 말했다.

“저는 물어보는 것만 답해주는 친절한 사람입니다.”

그녀는 열을 잔뜩 받아 약이 오른 상태에서 책장의 꽂힌 잡지를 꺼내며 말했다.

“치! 내가 안 읽었다. 그랬잖아요!”

상관없다는 듯이 그가 자리로 돌아와 노트북 화면에 지켜보자, 그녀는 투덜거리며 말했다.

"그리고 잡지 저건 내 건데. 자기가 산 것처럼 자연스럽게 책장에 꽂아놓는건 또 뭐람! 쳇!"

그가 눈길도 안주고 피식거리자 그녀는 잡지의 기사를 읽어보다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영영에게 다가와 물었다.

“그렇게 열심히 쳐다보시는 화면에 나오는 그 오래된 책 내용은 뭐에요? 한글로 보아 조선시대 것 같은데.”

“이건 안동 장씨 정부인이 만든 ‘음식디미방’이라는 17세기 조선 시대 고유의 전통음식을 다룬 요리책이예요. 요리법이 한글로 쓰이기는 최초죠.”

“그럼 이 요리법을 참고 해보시려고요?”

“그냥 공부하는 거예요. 결국, 퓨전노선을 타긴 했어도 전통을 계승하여서 한다는 의의는 변함없으니까요.”

혜미는 미소를 짓다가 걱정되는 눈빛으로 말했다.

“혹시 주변의 방해는 여전해요? 가격경쟁이나 마케팅이나.”

“네, 같은 메뉴 개발이나 할인 같은 손님에 대한 이벤트도 하고 좋은 조건도 권유가 들어오고 그러죠. 아니면 주변에 양산되던가, 주변 손님들도 이미 가격 부담이 많든 적든 카페 쪽으로 많이 가셨고, 군침 도는 제안에 건물주인 아저씨는 이미 넘어간 모양이지만.”

“솔직히 솔깃하진 않아요? 돈을 좀 더 많이 벌 수 있다는 조건이요.”

“솔깃하죠, 확실히.”

노트북 화면에 시선을 집중하던 영영은 고개를 돌려 혜미를 쳐다보며 말했다.

“하지만 어쩌나? 난 돈보단 이 가게랑 좋은 품질의 차와 먹을거리를 파는데 관심이 많아서요.”

혜미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럴 줄 알았어요. 기사 보니까 파급효과가 좀 있을 것 같아요. 이미 그쪽으로 전화가 간걸 봐도요. 게다가 인터넷상에서도 생각보다 더 뜨고 있다고요.”

“응? 무슨 소리죠?”

“포털 사이트 들어가 봤을 거 아네요.”

“또 엉뚱한 이야기인가요.”

영영의 말에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생각해 보던 그녀가 정말 대략 난감한 표정으로 영영의 노트북 키보드를 만졌다.

“뭐하는 거죠!! 지금 내가 읽던 걸, 끈 거예요??”

“이따 다시 켜요! 어휴, 내가 정말 답답해서!”

혜미가 짜증 섞인 소리를 내며 인터넷 브라우저를 킨 후, 사이트 검색창에 자신의 가게 명을 적고 enter키를 눌러 영영에게 화면을 보여주었다.

“자, 보세요. 컴맹 아저씨.”

“아니, 인터넷을 잘 안 할 뿐이지. 인터넷으로 자료찾고 주문까지 한 사람에게 컴맹이라니!”

영영이 혜미에게 하소연하듯이 말하면서 스크롤 바를 내리며 화면을 확인해 보자. 자신의 가게에 대한 위치나 상세정보, 블로그나 SNS 내에서 방문했던 손님들의 이야기나 사진, 평가와 소수의 기사가 많이 올라와 있었다.

“아, 그랬었구나.”

“아저씨 가게에 대해 평들이 대부분 좋아요. 차에 대한 만족도와 주인이 친절하고 자상하며 좋은 정보도 제공한다는 이야기들도 많으니까 인터넷 좀 확인해 보라고요!”

영영은 지지 않겠다는 듯 말했다.

“인터넷을 쓰긴 해요! 방금 고서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합법적으로 다운로드 열람한 거라고요.”

“그럼 그렇게 이기적으로 쓰지 말란 말이에요! 우리나라 도시에 대해서 고흥이나 추풍령은 아는데 서울이랑 수도권을 모르는 거랑 뭐가 달라요!”

영영과 혜미 모두 옥신각신하는 사이, 가게 앞에 차량 한 대가 멈춰 서더니 단정한 복장을 한 남자 두 명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조용해 해봐요! 어서 오세요.”

영영이 인사를 건네고 혜미가 그들을 이상하게 바라보자, 인사를 받은 한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여기 카페 ‘무림일검’을 운영하시는 사장님 되십니까?”

“네, 맞습니다. 진영영입니다. 그런데 뭐 주문하실 것이라도...

그러자 그 둘은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품 안에서 신분증 명찰을 꺼내며 말했다.

“반갑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나왔습니다.”

영영과 혜미는 그 말에 깜짝 놀랐다.

“예? 거기서 왜 나오셨어요?”

혜미가 묻자 식약청 직원이 영영에게 물었다.

“누군지 물어봐도 되나요. 진영영 씨.”

영영은 혜미를 흘깃 쳐다보며 말했다.

“알바 생이에요.”

직원이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혜미는 몰래 영영의 옆구리를 찌르며 짜증을 부리고 영영은 영영대로 그녀에게 그냥 인정하라는 진압용 눈빛을 내보냈다.

“이 가게에 한약재를 취급한다죠?”

“네. 그렇습니다. 전통 한방차 카페니까요.”

“이곳에서 취급하는 한약재, 음식재료 등에서 안전하지 못한 성분이 있을지 모른다는 신고가 들어와서 식품위생법에 의거해 확인 차 나왔습니다. 이곳에 있는 모든 먹고 마실 수 있는 것들의 샘플을 챙겨 가 조사할 것이며 이를 방해하거나 샘플 압수품목 은닉이 발각될 시, 공무집행방해가 될 수 있음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영영은 급히 당황하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저희 집은 유통기한도 지키고 비용 상관없이 다 국내 현지에서 기르는 재료만 엄선해서 최대한 직접 가져옵니다.”

영영이 직접 현장에서 찍었던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말하고 그것을 본 직원이 일행으로 온 다른 직원과 짧게 이야기를 한 후, 고개를 끄덕이고 큰 플라스틱 통을 차에서 꺼내와 부엌을 뒤져가며 샘플을 채취하고 사진들을 찍기 시작했다.

“뭐, 일단 그런 건 증거자료로 가져는 가겠지만, 어차피 저희가 조사하면 다 나오는 것이고, 당귀 같은 한약재의 경우 중국에서 반입된 유해물질이 든 한약재가 국내산으로 유통되는 사례가 있어서 특별히 주의해 단속하고 있습니다. 다른 것도 가짜 한약재나 유해한 성분 부분에서는 마찬가지고요. 그 밖에도 식중독 균이나 여러 건강 위험요소들을 조사해 볼 필요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혜미는 대화를 마친 직원이 사진기를 꺼내며 부엌이나 가게 안의 사진을 찍고 나서 동료를 도와주자, 조용히 영영에게 말했다.

“신고 들어 왔나 봐요.”

그가 걱정되는 표정과 말투로 혜미에게 말했다.

“좀, 불안하네요.”

“왜요? 걸릴 것 없다더니.” 오히려 혜미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아니, 혹시 정말 만약에 꼬투리도 잡히면.”

“위험요소가 있어요? 혹시 벌레라도 나와요? 아님 유통기한 잘못 적었어요?”

당황하는 혜미를 바라보던 영영이 무슨 소리냐는 듯 기가 막히다는 표정과 함께 말했다.

“아이, 이것봐요! 흠흠, 말해두겠는데! 유통기한은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고 저희 건물 전체가 방제회사 관리 받아요. 건물주인 아저씨가 해충 공포증이 있다 보니 건물 전체를 관리하는 쪽으로 계약을 해버리셔서.”

혜미는 짜증내는 영영을 보고 말을 말자는 듯 고개를 젓다가 뭔가 생각난 듯 웃으며 말했다.

“어쩌면 이게 기회가 될 수도 있어요. 전화위복, 새옹지마라잖아요.”

“뭐가요?”

“어차피 유통기한 지난 것도 없고, 재료는 다 국내산이고, 병균에 감염될 위험이 있지만, 해충도 없고 아저씨가 청소를 잘하니까 걸릴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전제로 그 검사 결과가 좋게 나왔을 때 이 가게에 대해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인정했다는 거 아네요!”

영영은 의아한 표정으로 혜미를 쳐다봤고 그녀가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한참 후, 샘플 채취를 마친 직원들이 인사를 한 후, 샘플들을 차에 싣고 나가자 그녀는 영영에게 말했다.

“안 걸리면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인정을 받은 가게가 되는 거고, 걸리면 뭐.”

“정말 꼬투리 잡히진 않겠죠?”

그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글쎄요.”

“누가 신고 했을 지가 난 더 신경 쓰이는데 궁금하지 않아요?”

영영이 알고 싶지 않다는 듯 퉁명스럽게 말했다.

“모르죠. 알게 뭐예요.”

“하긴. 검사해서 안 걸리면 안전하고 몸에 좋은 음식과 차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테고 걸리면 신고한 사람 복수해서 찾아내면 되는 거고. 우리에게 혜택을 더 많이 주네요. 어차피 영영씨와 가게의 최고 경쟁력은 피터 드러커가 이야기한 실적을 내는 부분인 제품, 시장, 유통경로[각주:2]를 모두 확보했고 깨끗하니까요.”

그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들을 맞이하며 내심 참 독특한 성격으로 여겨지는 혜미에게 말했다.

"미안한데 이번에 메뉴좀 추가할 거라서 글씨 써주는 것 좀 도와줄 수 있어요? 저렇게 예쁘게 글씨를 쓸 자신은 없어서."

"네, 물론이죠. 제가 일할 때 캘리그래피[각주:3]도  배워 놨거든요. 그래서 투박하기 그지없는 아저씨보단 글씨가 섬세할 수 밖에요. 자자, 준비되면 시작해보죠."

"나같이 커피 원두를 핸드드립 할 수 있고 에이드나 디저트 데코레이션 뿐만 아니라 라떼아트까지 고객이 원하는 대로 섬세하게 해주는 쪽 보단 연장을 끌고오고 연마기를 들어서 나무를 갈아내는 쪽이 더 투박하지 않나요."

"하아, 하여튼간, 이 아저씨는 어떻게 말하든 지지 않으려 한다니깐.."

혜미가 혀를 차자 영영은 능청스럽게 아무런 표정의 변화 없이 입을 열었다.

"우리 주변의 다른 카페가 커피말고도 에이드,스무디등 음료를 취급하는 것처럼 전통음료를 메뉴에 추가할거니까 읊는대로 잘 받아적어요."

고개를 끄덕인 혜미가 의자를 끌고 온 후, 밟고 올라가서 영영이 하는 말을 받아 적어가며 메뉴판의 빈 공간을 없엤고 얼추 마무리가 되자 영영이 혜미의 솜씨에 감탄하며 말했다.

"와, 그쪽이 자랑한만큼 확실히 글씨가 예쁘니까 확실히 메뉴가 잘 들어오네요. 떡 말고도 화채, 양갱등 디저트 류도 추가했고 따뜻한 음료에는 탕과 숙수(熟水), 차가운 음료에 밀수(蜜水) 갈수(渴水)류, 숭늉도 포함되었고 다 됐어요."

"아니, 이렇게 많은 종류를 왜 지금 추가하는 거죠?"

의아해하는 혜미에게 그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답했다.

"원래는 있었어요. 그동안 차를 더 중요시한 것도 있긴 했지만, 사실 이런 음료들을 처음에 말하다시피 같이 출시를 했었는데 가뜩이나 손님들도 적은데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생소해서 인지도도 낮다보니 마진도 나쁘고 소요도 적어서 다 중지된 메뉴들이에요. 지금처럼 가게 손님들이 찾아오시고 차에 대한 호응도가 원만할때 다시 출시하면 어떨까 좀 궁금하기도했고 숙수나 갈수같은 전통적으로 내려온 음료들도 젊은 층이나 많은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알게되니 괜찮을 거 같아서요."

"아, 음, 일리는 있네요. 내가 보기에는 인지도가 무척 낮은걸 깔고 간다는 걸 제외하면 좋은 아이템인거 같은데요. 그나저나 정말 솔직하게 제가 받아서 쓰긴 했는데 이 음료들이 처음 들어보는 것들이라 뭔가 뭔지 모르겠어요. 숙수는 또 뭐고 갈수는 뭐람?"

혜미가 탄식하며 묻자 영영이 팔짱을 끼고 말했다.

"숙수는 약초나 재료를 달인 음료예요. 거기에 꿀을 넣든 누룽지를 넣던 방법이 다양하죠. 차조기 잎을 넣은 자조숙수, 정향과 죽엽을 넣은 정향숙수등이 대표적이죠. 갈수는 '갈(渴)' 자가 갈증의 그 '갈(渴)'자가 맞아요. 청량감으로 갈증에 도움준다는 뜻으로 가루를 낸 한약재와 과일즙에 혼합해 달여서 식힌 음료에요. 한약재에 누룩과 꿀을 넣어만들기도 하죠. 대표적으로 오미자를 넣은 오미갈수나 재래종 사과의 품종중 하나인 임금에 정향가루를 넣어만든 임금갈수가 있고 포도갈수와 모과갈수가 있죠. "

"아, 임금이 사과였구나. 난 옛날에 임금님이 마셔서 그 임금인줄 알았네."

혹시라도 메뉴판에 빠진게 있나 살펴보면서 듣던 혜미의 너스레에 영영은 피식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탕은 끓인 물에 달인거로 알텐데 그것말고도 재료를 꿀에 버무려 졸여서 물에 타는 것도 탕이라고 해요. 잣과 호두, 꿀을 넣은 봉수탕과 가장 유명한 오매[각주:4]와 백단향을 넣어 여름에 궁중에서 마시던 제호탕, 오미자즙과 콩즙을 넣어 만든 오미탕. 차조기잎으로 만드는 자소탕이 있죠."

"아항, 그렇군요." 혜미가 받아적으며 대답했다.

"밀수는 재료를 꿀과 함께 섞거나 띄운 음료를 말해요. 대표적으로 여러 곡물을 함께 갈아서 물에 섞어 먹는 미수가 있어요. 그 간 재료는 그래서 미숫가루라고 하죠. 대표적으로 소나무 꽃을 갈아서 만든 송화가루를 꿀과 섞어 만드는 송화밀수가 있어요."

"밀수, 밀수라. 이거 공항이랑 항구, 관세청 앞에서 팔면 꽤 재밌겠는데요? 히히, 그럼 이것들 재고 다 떨어지면 밀수도 없고~ 갈수도 없고~ 까하하하핫!"

혜미가 박장대소하자 영영은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어흐흑, 크히힙, 어! 방금 웃었죠! 아저씨!"

"아니, 이건, 그게 아니라." 당황하는 영영에게 혜미가 확인 사살을 날렸다.

"아저씨 의외로 이런데 코드가 맞으시구나. 으흠, 푸히히히힛! 어흨, 어흠 이제 더 적을거는 없어요?"

"네."  그가 정색하며 대답했다.

그녀는 의자에서 내려와 주변을 정리하며 말했다.

"뭐, 어쨌거나 그렇게 투박한 저의 섬세한 메뉴판 글씨는 마음에 드세요?"

"네, 진짜 예쁘게 잘 썼네요. 감성 풍부한 손님들이 좋아하겠어요."

그의 대답에 혜미는 흡족한 표정을 드러내며 만족스러워했다.

"그럼요. 자화자찬이지만 사람을 사로잡는 디자인이라니까요! 이거 배워서 축제행사나 체육대회 플랜카드, 주머니 가벼울때 통신사 아르바이트등  얼마나 솔솔하게 잘 썼는데요!"

“혹시 학과 수업은 안 가요?” 영영이 능청스럽게 물었다.

“수업은 없는데요. 아, 맞다! 내 정신 좀 봐. 시험공부하러 이만 가볼게요.”

한 손으로 자기의 볼을 가볍게 두드리는 제스처를 취한 혜미가 주섬주섬 입은 옷을 단정히 한 후, 나가려 하자 영영은 재빨리 한 재료를 꺼내주며 말했다.

“혹시 몸에 열이 많아요?”

“아니요.”

“소화기능이 강해요?”

“꼭 그런 건 아니에요.”

“그럼 그냥 받아요.”

그가 건네준 것을 받은 혜미가 의아한 표정으로 질문을 대신하자 영영이 말했다.

“황기 차 재료에요. 달여서 차로 마시면 되고요. 체질을 보강하고, 두뇌 활동을 활발하게 하며 소화기능을 활발히 하고, 정신 안정 효과가 있죠.”

"아, 감사합니다. 달이는데 가스비가 더 많이 들것 같지만요."

"우리집도 만만치 않아요. 차 끓이랴 특히 저기 두 방과 홀 난방하랴."

"그럼 차라리 가스를 걷어내고 온돌이랑 아궁이를 까는 게 어때요? 장작으로 불 때고, 자연에 가깝고 전통적이고 와아! 딱 좋네!"

손뼉까지 치면서 빙긋 웃는 혜미의 장난끼 섞인 말에 영영이 곤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어휴, 또 농담을.. 그런거 함부로 설치했다간 난 상관없어도 건물주 아저씨가 고혈압으로 실려가요."

"에이, 진지하게 굴지말고 받아주면 어디가 덧나요! 어쨌든 뭐, 고마워요! 잘 달여 마실게요."

혜미는 손에 쥔 황기를 한번 처다보고는 영영을 향해 들어 보이면서 말했다.

"아저씨. 이거 맛은요? 맛있어요?"

"어떨거 같아요?"  영영이 팔짱을 끼며 되물었다.

"아, 모르니까 물어보죠! 어떤 맛이에요?" 혜미도 새침스럽게 황기를 흔들면서 물어보자, 팔짱을 여전히 끼던 영영은 웃으면서 혜미를 향해 자신의 오른쪽 손바닥을 내밀며 말했다.

"황기 맛이요."

"악! 이 아저씨 또 놀리고 그래!!" 혜미가 투덜거리며 영영의 팔을 가볍게 두 주먹으로 툭툭 두드리자 영영도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아니, 참, 그럼 황기가 황기 맛이죠. 아님 사과맛인가? 하핫."

"에이!! 유치하게, 장난도 재미가 있어야 받아주지..." 혜미도 능글맞게 응했다.

"거참, 황기차처럼 쓴맛이 날 것 같지만 오히려 황기의 특유의 향과 함께 음미할수록 진하고도 구수하고 뭔가 끝이 깔끔하고도 섬세한 맛이 있다고 말해주는 쪽을 바라는 건가요?"

혜미는 영영의 팔을 치는 것을 멈추고 고개를 끄덕인 뒤, 현관문을 향해 뒷걸음질 하면서도 받아 든 재료를 다시 그에게 흔들어 보여주며 좋아서 베시시 나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고 영영은 미소를 지으면서 손님들이 오기전에 일상이 바쁜 그녀를 배웅하며 말했다.

“공부 열심히 하세요.”

"네, 다음에 또 봐요! 황기랑 같이 가볼께요! 고마워요!"

그리고 현관문이 닫히자 영영은 여전히 흐뭇한 표정으로 카운터로 돌아와 다가온 손님에게 웃으며 주문을 도왔다.


  1. 茶禮, 차를 마시는 예의 범절 [본문으로]
  2. 피터 드러커 <창조하는 경영자> 中 [본문으로]
  3. 글씨를 예쁘게 쓰는 서법 [본문으로]
  4. 烏梅, 불에 그을린 매실 [본문으로]

'Tea(Main story) > 본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7. 티 타임(Tea Time)  (1) 2016.05.02
6. 늦게 온 편지 -2  (2) 2015.12.04
5. 내 차가 그리네 -2  (1) 2015.10.29
5. 내 차가 그리네 -1  (2) 2015.10.04
4. 우리집 일호점과 얽힌 서로 -3  (0) 2015.09.12
Posted by 찻집알바
,